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감동을 준 것인가. 여기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대체로 음악청취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은 듣는 곡의 정교한 리듬이나 코드 전개에 매료된다. 확실히 참신한 리듬과 세련된 화음은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기분을 우아하게 만든다.
음악에 대한 경험이 덜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 일반 대중들은 리듬이나 코드워크가 아닌 ‘멜로디’가 먼저 귀에 들려온다. 아마도 통상적인 의미에서 청취자가 음악으로부터 받는 감동은 ‘아름다운 선율’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70년대 우리 팝송 팬들이 가사를 잘 모르면서도 카펜터스, 로보, 비지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를 애청, 애송한 것은 그들 노래의 빼어난 선율 때문이었다. 비틀스는 말할 것도 없다. 록 리듬을 내세운 신중현이나 조용필도 따지면 ‘멜로디의 도사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악전문가들이나 평론가 또는 실제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창의성을 논할 때 멜로디보다는 리듬이나 코드워크가 잘된 곡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뛰어난 선율을 만들어낸 작곡가보다는 고감도의 리듬이나 화성을 펼쳐낸 작곡가를 비교우위에 놓는 것이다. 만약 선율의 패턴이 통속적인 느낌을 줄 때는 아무리 귀에 잘 다가와도 가차없이 외면한다.
음악은 그러나 멜로디가 기본이다. 리듬, 화음, 멜로디라는 음악의 3대 요소 가운데 으뜸을 치자면 선율인 것이다. 특히 대중과의 교감이란 측면에서, 즉 대중을 상대로 한 음악의 경우 멜로디는 우선의 호소력을 갖는다. 물론 좋은 음악은 그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울려야 하지만 굳이 분석하자면 멜로디의 비중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그룹 ‘푸른 하늘’과 듀오 ‘화이트’로 활동한 가수 유영석은 중독성이 강한 선율의 곡들, ‘겨울바다’ ‘눈물나는 날에는’ ‘꿈에서 본 거리’ ‘사랑 그대로의 사랑’ 등을 잇달아 써냈다. 대중적 호응으로도 단연 선두였다. 하지만 그가 음악성 측면에서 인기에 상응하는 최고 대우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멜로디는 좋은데···’라며 아쉬움의 꼬리를 붙이곤 했다.
그는 “멜로디는 음악의 3대 요소가 아니라 ‘절대’ 요소라고 생각한다. 음악계에 데뷔하던 초기에는 드럼도 무시했다”고 말한다. 피아노 하나로 연주하고 좋은 선율을 노래하면 리듬이 없고 코드 전개도 평이할지라도 그것은 최고의 음악이라는 주장이다.
KBS 라디오 김우석 프로듀서의 멜로디 중시론을 들어 본다. “사실 작곡가가 귀에 잘 들리는 이른바 캐치(catchy) 멜로디를 못써낸다면 그는 창작자로서의 힘이 시들해진 것이다. 그것이 안되니까 리듬이나 화음장치로 메우려는 기술을 동원한다고 본다. 훌륭한 작곡가는 무엇보다 청각을 장악하는 선율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의 감동은 멜로디에서 나온다. 최신 가요들 가운데 빼어난 선율이 담긴 곡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더러 괜찮은 것도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또 판에 박힌 것들이다. 요즘의 음악이 주는 감동이 빈약한 것은 행여 이 때문은 아닐까.
임진모(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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