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듣고서는 조금 따분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기 쉽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의미야 있겠지만 재미는 적지 않을까? 그러나 낯선 이름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화면이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강렬한 빗줄기처럼, 머리 속의 고정관념들을 쉴새없이 두드려 무너뜨린다. 이런 영화만 계속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처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숏, 긴장감 있는 편집으로, 음... 이건 보통 영화가 아니군.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이렇게 의식의 끈을 단단하게 조인 관객들은 자신의 지적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하는 극적 구조에 몰입되며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나선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카이저 소제라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여 마지막 거대한 반전으로 우리의 뒷통수를 쳤던 ‘유주얼 서스펙트’는 반전은 좋지만 연출력은 소재를 따라가지 못했었다.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는 단선적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반전의 묘미는 있지만 서사적 재미는 크지 않다. 그러나 ‘아이덴티티’는 복합적 이야기의 매력,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지적 스릴러로서, 뛰어난 감각의 리듬 있는 편집과 함께 영화 보는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폭우가 쏟아지는 캄캄한 밤, 네바다주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모텔.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는 모텔을 고립시킨다. 도로는 차단되고 전화는 불통되며 휴대폰 밧데리도 모두 소모된 상태다. 각각 다른 사정으로 모텔에 모인 11명의 사람들. 살인범을 호송하는 경찰, 여배우와 전직 경찰인 그녀의 리무진 기사, 거액을 들고 플로리다의 오렌지 농장을 구입하러 가는 창녀, 신혼부부,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와 말없는 소년, 그의 아버지 등 3가족, 비밀을 숨기고 있는 모텔 주인, 그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생일이 똑같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원인모를 죽음을 당하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의 주머니에서는 모텔 열쇠가 발견된다. 그것도 9호, 8호, 7호, 이렇게 차례대로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 살해당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의 윤곽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조금씩 바꿔진다. 누구나 혐의점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도 곧 살해당한다. 최후로 남은 자는 누구인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범죄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밀실 살인사건이지만 그러나 그 복합적 구성은 아주 뛰어나다. 특히 감독의 입체감 있는 연출력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활짝 열어젖히며 사건이 진행되는 모텔에만 시선을 한정시키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입체적 구성으로 사건을 확장시킨다.
전직 경찰 에드 역에 ‘콘 에어’의 존 쿠삭이, 살인범을 호송하는 경찰 역에 ‘좋은 친구들’의 레이 리요타가 나와 개성적인 연기대결을 벌인다. 이렇게 지적인 구조의 영화에는 관객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전혀 살인범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주목해보라. 그래도 비밀은 숨어 있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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