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그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은 SCI 논문 수에서 상위 7개국이 그대로 G7 국가라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참고로 한국은 SCI 논문 수에서 세계 14위이고 GDP 규모로는 세계 13위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경제구조, 정치구조, 사회보장 어느 면에서 보아도 한국은 이미 선진국의 문턱을 훨씬 넘었으며 후퇴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같은 과학기술 기피현상이 계속된다면 애써 도달한 선진국의 위치를 고수하기 힘들 것이다. 중국의 추격,선진국의 기술협력 기피, 이공계 기피라는 악재 속에서 한국의 과학기술을 지속 발전시킬 묘안은 과연 무엇일까.
모두 알듯이 선택과 집중에 의한 일등기술 확보, 국제화를 통한 세계 국가로의 발돋움, 과학기술 인력 양성 프로그램의 혁신, 국가 연구개발 시스템의 혁신 등이 답이다.
현대시대에서 일등기술은 능력 있는 과학기술자 집단에 집중투자가 이루어졌을 때 나온다.
우리의 과학기술 중에서 정보통신 분야는 가장 많은 일등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정보통신 사업자의 연구개발이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제조업체의 개발도 단기적 수익성이 높은 극히 소수의 품목에 집중되고 있어 향후 일등기술의 목록을 늘려 가는 것이 과제다.
미국과학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정보통신 분야의 일등연구란 산업화 성공, 새로운 설계기법의 고안 및 개발, 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개발 도구 확보에 고급 연구인력 양성이라는 성과가 반드시 수반된다.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세계 기술을 주도적으로 이끌 중장기적인 연구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포스트인터넷, 포스트웹, 포스트모바일을 구상하고 획기적인 기술들을 국가 정책적으로 개발할 때다.
정보통신은 속도의 세계다. 인터넷, 모바일, e비즈니스의 접속, 처리 속도가 한 국가의 정보통신환경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면 법률과 제도의 개선속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개발된 기술이 연구논문, 특허, 표준, 상품 등의 다양한 형태로 세계적 인정을 받는 수준에 도달하는 속도가 중요하다. 과학기술에는 국가· 대륙이라는 한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형 기술, 동아시아 표준, 지역 포럼은 힘을 기르기 위한 전략으로 효과적일 수 있으나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 한국 안에서만 통하는 일등이란 진정한 일등이 아니다.
일등 기술을 만들어 낼 인재를 양성할 한국의 대학의 문제점도 여전하다. 일례로 30년 전의 이론으로 분류한 학과체계가 그대로 있고 이론 교육에 치중한 이공계 교육은 진정한 경쟁보다 현실안주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공계를 밀어주려던 BK 프로그램도 여러 가지 현실적 고려 속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래의 목표에서 결국은 멀어졌다. BK 이후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Post-BK)의 윤곽은 아직도 안개 속이다. 기존의 시스템이 부적합할 때에는 고쳐서 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학문간의 융합, 새로운 지식의 창조, 실용교육의 확대, 학년과 학과를 자유로이 선택하는 시스템, 국제화된 캠퍼스가 필요하다.
연구직으로부터 이직을 원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은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첨단 연구, 기존의 벽을 허무는 발명을 이룩하는 연구자에게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받는 것과 같은 대우가 필요하다. 과기계도 예술계, 스포츠계에서 일등이 2∼3등보다 월등한 대우를 해주는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연구 평가를 통하여 우수 연구자를 발굴하고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어 이직을 막고 연구직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같은 기업연구소, 기업연구소같은 대학 분위기를 갖추어 상호 교류를 손쉽게 해야 한다.
한국의 정보통신 기술은 세계적이지만 너무나 세계적이어서 이를 뛰어 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터넷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인터넷을 개선하기에만 매달려 있는 ‘인터넷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yh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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