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대표적 유적지 중 하나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해 청명한 기후와 산재한 고대 유물, 천혜의 비경에 전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시칠리아섬이 세계적 IT혁명의 원산지로 재도약하고 있다. 역사를 등에 업고 유명 관광명소에 머물 수도 있겠지만 문명을 일으키고 르네상스 혁명을 주도했던 그리스·로마인의 후예답게 기술과 문화, 역사를 아울러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출하기 위한 융합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시칠리아 남동쪽 끝단의 해변도시 카타니아에는 유럽 최대의 반도체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차세대 기술연구소와 최신 300㎜ 웨이퍼 공장이 위치해 있다.
62년 지리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지역의 인재를 등용하고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시작한 아날로그 반도체 연구개발이 모태가 돼 세계적 반도체업체로 성장한 ST는 이 카타니아 연구소와 생산공장을 발판으로 향후 10년을 대비한 포스트 실리콘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ST의 차세대 기술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살바토르 코파 SST(Soft computing, Si-optics and post-silicon Technologies)그룹 연구소장은 실리콘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융합기술 개발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새삼 강조했다.
“인류의 새 문명을 열어준 트랜지스터의 발명만큼 중요한 것이 지난 50년간 쌓은 실리콘 반도체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실리콘처럼 전 인류가 매달려 소재의 특성을 파악하고 기술개발에 집중한 것도 전무할 것입니다. 실리콘 기술을 기반으로 BT·NT 등 새로운 융합기술을 개발한다면 인류는 새로운 IT의 세계를 앞당길 수 있다고 봅니다.”
카타니아 연구소가 기반이 된 ST의 융합기술 개발은 바이오칩, 발광 실리콘, 태양열 전지 등 기존 실리콘 반도체와는 다소 생경한 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노미터급 실리콘 반도체 기술에 광학과 유기학 등을 결합한 것이라는 게 ST측의 설명. 또 월 수백만장의 웨이퍼(200㎜ 기준)를 가공할 수 있는 전세계 반도체업체들의 무수한 생산라인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경제적이라는 게 ST측의 생각이다.
ST는 이를 위해 세계 유수의 대학 및 연구소들과 광범위한 기술협력을 맺고 있다. 록펠러 재단으로부터는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와 DNA칩 검증 분야에 지원을 받고 있고, 모스크바 대학 및 러시아 과학 대학과는 실리콘 나노와이어 및 바이오일렉트로닉스에 협력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국립 연구소 및 대학들과는 유기학 및 화학분야의 소재 합성 등에 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샌디에이고 대학 및 버클리 대학과는 복합 방법론 연구에 대해 협조하고 있다. 이같은 산학 협동은 ST의 차세대 기술 연구방향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연구인력의 교류, 연구설비의 공유 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광합성 작용 응용한 저가형 태양전지=ST가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곳은 나노기술을 적용한 태양열 전지. 새로운 태양전지는 화석연료를 연소시키거나 핵 원자로 등의 전통적인 전기생성 방법과는 달리 햇빛에서 오는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시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제조비용을 낮추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ST연구팀은 새로운 2가지의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첫번째는 식물이 햇빛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광합성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스위스 연방 기술청의 마이클 그래첼 교수가 지난 90년 개발한 방법으로 ‘DSSC(Dye-Sensitized Solar Cell)’라고도 불리는 셀을 이용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태양전지는 실리콘을 활용해 광전자를 전자와 정공으로 전환, 분리시켜 운반체로 활용해 전지의 접지면에 전도시켜 제조한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은 반도체 재료의 순도가 매우 높아야 하기 때문에 고비용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반면 DSSC셀은 식물이 햇빛을 에너지로 전환할 때 각각의 기능을 서로 다른 층에 의해 형성시킨다는 데서 착안, 유기염료 (광감광제)를 이용해 빛을 흡수하고 전자-전공으로 이뤄진 쌍(즉, 전자에 전송하기 위한 나노크기의 구멍이 있는 금속 산화물층)으로 액체 전해질인 정공-수송 물질을 만들기 때문에 재료의 순도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이같은 유도 폴리머에 위한 정공-수송은 와트당 전기 생산 비용을 낮춰 태양에너지를 상용화하는데 용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ST는 또 완전한 유기 접근 방법을 이용해 전자-억셉터와 전자-도너 등 유기물질을 혼합해 전극 2개 사이에 끼워 셀의 성능을 높이는데 전자-억셉터 재료로써 풀레런스(C60)와 전자-도너로써 유기 쿠퍼 혼합물을 적용키로 했다.
◇CMOS 기술을 적용한 발광 실리콘=ST가 개발하고 있는 또하나의 융합기술은 발광 반도체 기술. 가장 먼저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 기술로 ST는 1∼2년내 옵토커플러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실리콘은 PC, 휴대전화, 셋톱박스 등 각종 전자장비의 발광 신호 감지기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순수한 실리콘의 물리적 특성은 빛을 방출하기 위한 전도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갈륨, 비소, 인듐 등 값비싼 물질로 혼합물질로 구성되어 형성된 고가형 복합형 반도체 재료에 의해 구현하고 있는 실정이다.
ST가 최근 개발 중인 기술은 실리콘 기반, 즉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 공정을 활용해 20배 이상의 효율성을 보이는 빛을 발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특히 혼합물질 반도체와는 달리 기존 실리콘 소재와 공정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이다. 빛의 발산, 빛 도파 및 빛 감지 기능을 하나의 실리콘 칩에 집적하면서도 실리콘 반도체의 대량 생산라인을 활용할 수 있어 원가혁신도 크게 기대해볼 수 있다.
이 발광 디바이스는 이미 반도체 빛의 발산력 측정기준인 외부 총량 효율성이 팩터 1.5로 기존 반도체 재료의 총량 효율성을 넘어섰으며 팩터 50까지 발산력을 최대로 증가시킬 수 있다. 이는 실리콘 ㎟ 당 1mW 이상의 발광력을 만들어 내 빛의 효용성도 높일 수 있다.
ST는 이를 바탕으로 유기EL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LED 같은 산업용 반도체 조명, 옵토 커플러 같은 제품을 만들어 상용화할 계획이다.
◇실리콘 기술의 총아, 바이오 테크놀러지=ST의 융합기술의 결정체는 바이오테크놀러지에 모아져 있다. 카타니아의 200㎜ 웨이퍼 반도체 공장인 M5 옆에는 연구소에서 개발한 차세대 제품들을 테스트 생산해볼 수 있는 MEMS, 바이폴라, Bi-CMOS 등 다양한 시험 생산라인이 갖춰져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차세대 연구소 실험실에서는 연구원들이 혈액속의 DNA를 분석할 수 있는 바이오칩을 테스트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MEMS 공정을 활용해 만들었다는 이 바이오칩을 ST는 유럽의 유력 의학제품 제조업체들과 협력해 내년 대량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ST는 인체내 질병을 진단하고 일부 치료까지 가능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바이오 센서와 랩온어칩, 유체공학칩 등을 잇따라 개발해 바이오 일렉트로닉스의 새 장을 연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다.
ST의 유럽지역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리비오 발디 중앙 연구소장은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열어갈 대체제로 양자 컴퓨팅, 유기 디바이스, 탄소나노튜브 등이 있지만 어떤 것이 그 뒤를 이어갈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면서 “나노기술과 이를 접목한 융합기술의 개발은 앞으로를 대비한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타니아(이탈리아)=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 살바토르 코파 연구소장
“포스트 실리콘(post silicon)이 아니라 실리콘과 그 이후(silicon & beyond)입니다.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 50년간 전세계 반도체업계가 쌓은 실리콘에 대한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야합니다. 기존 실리콘을 바탕으로 광전자공학, 바이오일렉트로닉스, 나노유기학을 결합해 실리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컨버전스 시장을 만드는 것이 반도체 연구개발자들의 당면과제입니다.”
ST마이크로의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총괄하는 살바토르 코파 SST(Soft computing, Si-optics and post-silicon Technologies) 그룹 연구소장(41). 이탈리아 카타니아 대학 출신으로 그 지역에서 성장하고 ST의 연구원으로 출발해 차세대 연구소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그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해온 것은 ST의 향후 10년을 먹여살릴 새로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다. 현재 ST의 로드맵이 디지털컨슈머·이동통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주력할 응용 분야를 넓히고 새로운 분야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도 함께 작용했다.
이렇게해서 그와 ST가 찾아낸 해답은 바로 실리콘 공정을 활용하자는 것. 회사 설립후 40년간 매달려온 실리콘 반도체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 등을 활용하면서도 차세대에서도 기술 선도력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융합기술 개발이다.
세부적으로 집중할 분야도 정했다. 광학과 유기학, 바이오일렉트로닉스 등을 결합한 능동형 바이오 칩 플랫폼과 발광 실리콘, 중저가형 태양전지 개발. 이는 모두 실리콘 기술과 공정을 근간에 둔 것들이다.
이미 일부 개발이 진행된 것들도 있고 경쟁사 제품들이 상용화된 것들도 있지만 ST의 연구개발 방향은 명쾌하다. 실리콘, CMOS공정, 기존 연구개발 리소스를 활용한다는 것. 이는 곧바로 저비용과 자원의 효율성 제고, 그리고 친환경적인 기술개발이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특히 어느 소재보다도 많이 연구된 실리콘에 대한 전기적 특성과 통제 방법, 반도체 공정혁신에 대한 기하급수적 투자를 생각한다면 이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하는 대안기술 개발이 실리콘 융합기술 개발의 초점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발광반도체 개발에 갈륨비소·인듐 등 특수화합물이 아니라 기존 CMOS 공정을 이용해 빛을 발산시키도록 한 것과 태양열을 전기로 바꾸는 초소형 광전지 시스템을 광합성 원리를 이용해 저비용으로 구현한 것도 바로 환경친화적인 연구개발의 대표적 사례였다. 또 인체내의 DNA 분석과 검증을 자동화시킨 바이오칩에도 센서 및 최신 광학기술, 반도체 제조 기술을 결합하면서 노후 라인을 활용해 MEMS 공정을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탄소 나노 튜브와 유기 메모리 등의 성과물은 이론적 성향이 강한 반면, 나노 실리콘 기술이 기반이 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향후 20년간 지속돼 PC와 휴대폰을 이을 반도체시장의 차세대 킬러애플리케이션 출현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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