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에서 출발, 비포장도로를 시속 80km로 100분을 달려 도착한 적막한 시골마을 따게오.
기계 문명을 일부러 외면이라도 한 듯한 따게오는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낭만적인 마을이 아닌 외떨어진 농촌이었다.
전력시설조차 충분하지 않다는 따게오에 인터넷이니 컴퓨터니 하는 말이 통하기나 할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인터넷청년봉사단 ‘CIM(Cambodia IT Messenger)’가 머물고 있는 비영리단체 ‘꿈과미래학교’를 찾았다.
황량한 들판에 위치한 ‘꿈과미래학교’는 당초 기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한국인 선교사 김기식씨가 운영하는 공동체 생활 공간인 ‘꿈과미래학교’에는 32명의 현지인들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캄보디아 전체가 빈부 격차가 워낙 커 웬만한 중산층이 아니고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형편인 점을 감안하면 ‘꿈과 미래학교’에서 만난 32명의 현지인들은 그마나 행복한 편이라는 게 김기식 선교사의 설명이다.
이 곳에 머물고 있는 현지인들은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숙식을 함께 하며 영어공부를 하고있던 차에 CIM을 만나 난생 처음 제대로 된 IT 교육을 받고 있었다.
임진우(26 연세대 자연과학부 3학년) 진기식(26·성균관대 행정학과 4학년) 이승연(25·성균관대 행정학과 4학년) 진양기(23·충남대 자치행정학과 2학년) 등 4명이 한팀을 이룬 CIM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된 e메일 교육을 위해 두시간째 32명의 현지인과 뒤섞여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임씨와 진씨가 번갈아 강의실을 들락날락하며 e메일을 통해 글은 물론이고 사진까지 전송할 수 있다고 반복설명해도 현지인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8월초부터 2주간 CIM과 함께하며 현지인들이 보였던 호기심과 진지함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생소한 모습이다.
팀장인 임진우씨는 “현지인들이 인터넷을 처음 사용해봐 e메일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 선교사가 백방으로 수소문해 중고 컴퓨터 10대를 구하는 데 성공, 컴퓨터교육장을 만들기는 했지만 인터넷을 연결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3시간 동안의 e메일 교육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현지인들이 e메일 계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 혼란에 빠져들었다.
진기식 씨의 열띤 설명이 이어지면서 혼란은 진정됐지만 현지인들의 눈빛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결국 점심 시간에 앞서 CIM 회의가 열렸다.
CIM의 결론은 ‘백문이 불여일견’.
100번 설명보다 실제로 e메일을 주고 받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 김 선교사와 CIM이 머리를 맞대고 실천 방법을 고심하던 끝에 프놈펜 시내에 있는 인터넷PC방을 통째로 대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PC방이 정상 영업을 개시하기 훨씬 이전인 새벽 5시부터 1시간 30분 가량 빌리기로 잠정 결론을 내리자 김 선교사가 PC방 섭외를 위해 차를 몰고 프놈펜으로 떠났다.
진기식씨는 “캄보디아의 정보화 수준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인프라가 너무 부족해 지난 2주일 동안 적지않은 혼란을 겪었다”며 “꿈과미래학교에 도착해 첫번째로 실시한 과업이 발전기 설치였다”고 소개했다.
컴퓨터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만이라도 전력을 충분히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CIM은 정보 격차 해소라는 본래 목적 외에 각별히 신경쓴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이른바 ‘한국문화 알리기’.
이미 지난해 월드컵을 통해 캄보디아에 널리 알려진 한국을 보다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CIM은 활동비를 모아 ‘춘향전’과 ‘내마음의 풍금’ 등 비디오 테이프와 VCR, e코리아 홍보물을 별도로 준비했다.
CIM은 특히 ‘꿈과미래학교’ 내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소규모 ‘한국문화관’ 건립을 위해 준비한 한국관련 영상물과 자료를 전부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캄보디아가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고 있어 한국과 관련된 홍보가 많이 필요하다는 김 선교사의 귀뜸에 출발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이 덕택에 ‘한국문화관’ 건립을 당초 예정보다 휠씬 수월하게 이룰 수 있게 됐다.
VCR 시청후 CIM 팀원들과 현지인들이 하나가돼 축구와 태권도를 함께하며 그동안의 쌓은 사랑과 우정을 재확인했다.
국지성 호우인 스콜이 한바탕 쏟아진 후 프놈펜으로 갔던 김 선교사가 인터넷 PC방을 예정대로 빌릴 수 있게됐다는 낭보를 갖고 돌아왔다.
당초 CIM이 따게오 현지인들과 지속적인 지원과 교류를 위한 방안으로 생각했던 e메일을 본격적으로 맛보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CIM 팀원들과 캄보디아 현지인들은 다음 달 새벽을 위해 결코 짧지 않았던 13일 하루 일과를 조용하지만 뿌듯함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정리했다.
<캄보디아=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 CIM 4인방
개성이 뚜렷한 신세대 대학생 4인방으로 구성된 CIM은 절묘한 조화로 캄보디아 따게오에서 IT 코리아 홍보 사절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들은 철저한 분업화를 통해 IT 교육과 영어 교육, 택견 및 태권도 교육 등을 병행 실시해 IT코리아의 위상은 물론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첨병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CIM 팀장인 임진우씨는 이번 봉사단 활동 참여에 앞서 한달간 제안서 작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 정리하는 등 대표로서 손색없는 면모를 보여줬다.
SCJP(Sun Certified Java Programmer) 자격증을 보유한 임씨는 겨울 방학은 물론 4학년이 되는 내년 여름방학에도 인터넷청년봉사단에 참여, 변화하는 캄보디아의 IT 수준을 재점검해 보고 싶다는 의욕을 밝힐 정도로 이번 활동에 대해 강한 애정을 나타냈다.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보유한 진기식씨는 논리적이면서도 차분한 교육 진행으로 현지인들이 꼽은 명강사 중의 명강사였다.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인터넷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이 가르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는 진씨는 IT와 현지인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실천, 따게오에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한국인의 이미지를 심는 데 일조했다.
미국 웨스트하이스쿨과 오레곤주립대학을 다녀 영어를 한국어처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승연씨는 CIM의 홍일점으로 ‘꿈과미래학교’ 도착 직후부터 현지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따뜻한 감성으로 현지인들을 감싼 이씨는 이번 봉사활동 내내 팀원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고역을 치뤄야 했다.
이름모를 벌레와 모기, 쥐가 공생(?)하는 ‘꿈과미래학교’에서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기식 선교사 집에서 출·퇴근하는 특전을 얻어 나름대로 호강아닌 호강을 누렸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CIM 막내인 진양기씨는 태권도와 택견 등 전통 무예로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지만 현지인 복병의 등장으로 자칫 체면을 구길 뻔 했다.
현지인의 태권도 대결 신청을 호쾌하게 받아들였지만 시합중에 허리 부상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훨친한 키와 시원스러운 성격에 매력을 느낀 현지인들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이국에서 염문설에 휩싸인 주인공이 됐다.
봉사활동 내내 굳은 일을 도맡았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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