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포함한 우리나라 유료방송 시장은 최근 몇년 사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국내 전체 대상가구 1500만 가구 중 약 85% 내외가 이미 유료방송에 가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국내 방송 환경을 이해한다면 공공성을 우선하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와 경쟁 시장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뉴미디어 방송은 결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어온 지역 민방의 역외 재송신 문제,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허용 여부 논란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방송에 관한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지상파 방송에 관한 시청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에서 저질성 시비, 정치적 편향성에 관한 것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사업자들간의 이해 충돌에 따른 방송 사업자간 갈등이다. 후자에 대한 해결은 아무래도 시청자보다는 정책 당국자들의 몫이다.
최근 방송위가 마련한 방송법 개정안 가운데 전체 유료방송 시장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케이블TV 지역방송국(SO)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조항은 관심있게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현재 대기업, 외국자본의 SO투자 제한선인 33%에 대해 업계가 요구한 49%까지 완화를 수용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방송은 규모의 경제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무엇보다 시급히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을 위해 대규모 투자가 절실한 SO로서는 위기라 볼 수 있다.
여기서 SO사업자들은 이와 같은 방송위의 입장에 대해 심각한 자기 고민을 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른바 SO사업자들의 지나친 방송 시장 교란 행동들이 방송정책 당국으로 하여금 더이상 방치해서는 어렵겠다는 위기감을 갖게한 것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방송위의 이와같은 결정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영향력을 끼치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최근 SO들은 지역방송사업자로서 ‘동네 방송 사업자’의 영역을 뛰어 넘어 점차 광역망 사업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SO사업자들은 이미 그 사업의 내용에서 방송 사업자라기보다는 인터넷 등 초고속 전송망을 이용한 통신 사업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시점에서 SO사업자들이 ‘돈 안되는(?)’ 방송 사업보다는 대규모 통신 사업자로 변신하고 싶은 의도가 뚜렷해 보인다. 방송위가 이제서야 SO사업자들의 의도를 눈치 챈 듯하다.
둘째로 방송법 개정을 통해 SO의 채널 편성권을 일부 제한할 뜻을 보이는 점이다. 즉, 홈쇼핑 채널의 무분별한 편성에 대해 일부 제한하려는 의도이다. 홈쇼핑 채널은 SO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다. 5개 홈쇼핑 채널을 송출해주면서 그 대가를 받아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확보함으로써 저가 출혈 경쟁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는 셈이다.
지금처럼 홈쇼핑 채널간에 지상파 방송의 주변 채널 배정을 둘러싼 과당경쟁이 지속되는 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홈쇼핑 채널들에 전가될 것이다. SO들의 본래 사업 목적인 ‘유료방송 가입자 증대→정상적인 수신료 징수→정상적인 컨텐츠 대가 지급’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홈쇼핑 채널과의 ‘불건전한 동거’를 막아 자금원을 차단시켜 본업에 충실하도록 유도하려는 게 아닌가 한다. 이밖에 드라마, 스포츠, 영화, 오락 등 인기 장르 위주의 채널 편중 현상 심화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제도적 보완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SO는 이제 스스로 공적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방송사업자로서 거듭나야 한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난받는 규제 조치들이 왜 나오게 됐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해답이 나올 것이다. 프로그램 생산자인 방송채널 사업자들의 역할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들 또한 지금까지 모든 문제를 SO에 전가하다시피 해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SO와 정책 당국의 무성의, 무대책에 대해 억울해 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는지를 솔직하게 반성할 때 새로운 미래가 그들에게 다가 올 것이다.
◆김달진 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국장 e-pa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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