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하우리 권석철 사장(2)

 지난 99년 4월 26일 하우리의 15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13명 전직원이 모두 동원돼 비상 사태 수습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직원 중 몇몇은 몇 시간째 걸려오는 고객들의 문의 전화를 받느라 목이 잠겼고 또 다른 직원들은 PC를 들고 와 몇 시간씩 줄을 서있는 사람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무실 한켠에는 CIH 바이러스에 감염돼 무용지물이 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CIH 바이러스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던 이 바이러스가 하우리에게는 도약의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가 처음 CIH를 접했을 때는 바이러스 활동일(매년 4월 26일)로부터 약 일주일 전이었다. PC내 파일과 하드디스크는 물론 플래시메모리까지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감염 증상을 가진 것으로 분석됐다. 뒤 밤을 꼬박 새워 긴급히 메모리에서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내놓고 CIH 바이러스의 위험까지 경고했지만 신생 백신업체의 경고에 귀기울이는 이는 드물었다. 결국 많은 개인과 기업, 공공기관들이 피해를 입었다. 감염된 PC의 부품 교체 비용만도 약 400억원에 달했다.

 사건이 터지고 약 일주일동안 직원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수백대의 PC를 복구했다. 숨돌릴 시간없이 일한 직원들은 돌아가며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CIH 바이러스는 우리에겐 큰 호재였다. CIH 바이러스를 메모리상에서 완벽하게 진단·치료하는 백신인 ‘바이로봇’ 구매발주서가 사무실 한쪽에 위치한 팩스에서 줄지어 나왔고 98년 1억원이었던 매출이 99년에는 2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신생백신업체가 고도의 기술로 치밀하게 제작된 CIH 바이러스를 메모리에서 완벽하게 치료한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우리가 바이러스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한 게 아니냐”는 의심섞인 질문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밤새워 치료제를 개발한 우리를 오해하는 세상이 야속했지만 곧 대만에서 제작자 첸잉하오가 검거되면서 누명도 씻겼다. 또 주위에서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우리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CIH 바이러스를 치료한 백신회사”로 불러주었고 영업도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하우리의 기술력과 발 빠른 대처능력을 검증케 해준 CIH 바이러스로 인해 하우리는 첫번째 전환기를 맞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모두다 밤새워 고생해준 직원들 덕이었고, 우리의 결속력도 이전보다 강해지는 걸 느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간 세상이 알아줄 거라던 막연한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용기백배한 우리는 더욱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 권석철 하우리 사장 sckwon@hau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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