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 통신정책 결정 여론몰이 의혹

비난 여론 의식…신뢰도 흠집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정통부 수요조사 결과

 “010 번호통합은 2004년부터 점진적으로 부여하는 방법과 2007년 한꺼번에 전환하는 방식이 있습니다.후자는 일시에 번호를 변경해야 하므로 사회적 경제적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어떤 방안을 선호하십니까?”

 지난 1월 정통부가 KISDI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문항이다. 어떤 답이 많이 나올 지 뻔히 예상되는 질문이다.

 정통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번호이동성 정책은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당시 정책 자체보다는 이용자에 미칠 영향과 공청회 등도 없는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여러차례 면밀한 수요조사를 통해 정책의 효과를 분석했다”며 “이용자 편익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누차 설명했다. 그러나 세 차례 수요조사의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오히려 발표이후 정책지지를 유도하는 설문을 실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통부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정책결정과정의 신뢰성에 의문=문제가 된 세 차례의 번호이동성 수요조사는 정통부가 관계연구기관인 KISDI에 의뢰해 이뤄졌다. 정통부는 수요조사에 나타난 시차도입 반대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또 시차도입후 예상 시장점유율을 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표후 정책지지를 유도하는 설문을 실시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참여했던 KISDI의 한 연구원은 “정통부가 번호통합을 무리하게 서두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드러내놓고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무리한 도입이 원인=정통부가 이러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번호이동성과 010 통합번호정책을 왜 앞당겼을까. 우선 정통부는 번호이동성을 도입함으로써 시장의 쏠림현상이 심해질 경우 나타날 비대칭규제 정책의 실패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해 시차도입과 010 조기 통합이라는 카드를 빼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렇지만 결정 당시 이상철 전장관의 임기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던 점과 무관치 않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번호이동성 시차제와 통합번호제는 SK텔레콤의 011의 브랜드 가치를 무효화시킬 정도의 파급력이 큰 결정과정이었으며 당시 ‘타깃’이 SK텔레콤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번호를 바꾼다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 번호정책은 가장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방편”이라며 “번호정책을 비대칭규제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성급하게 처리해선 안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정책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정통부는 통신사업자에 민감한 통신요금, 접속료, 번호 등 주요 통신정책에 대한 연구를 KISDI에 의뢰해 객관성을 확보해 왔다. 통신요금과 접속료 등은 국민경제와 통신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나 사업자의 영업비밀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정책의 근거가 된 이용자 수요 조사와 반영의 실체가 드러났다. 정책 결정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형식적으로는 독립됐으나 예산의 상당부분을 정통부의 연구과제 수탁으로 꾸려야 하는 KISDI와 정통부간의 관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정통부의 새 번호정책이 잘 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 정책 결정 과정 자체가 더욱 큰 문제”라면서 “이를 계기로 정통부가 정책결정 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