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여년간 방송전파 월경으로 일본에 아쉬움을 토로해야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이번 디지털TV 방송주파수 선점으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지상파 DTV 방송을 먼저 개시한 우리나라가 일단 일본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지상파DTV 전송방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아직 확실한 우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방송전문가들은 현재 전송방식을 변경할 경우 DTV 방송개시가 약 2년간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디지털TV 전파 월경은 지상파 DTV 전송방식 논쟁에서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왜 전파가 일본까지 갔나=한일간 방송전파 월경은 먼거리라도 전파가 바다를 건너면 강도가 더욱 세지며 타국의 주파수와 혼선을 일으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상에서의 더운 기류가 대기권의 찬 기류와 만날때 형성되는 초굴절통로(Ducting 현상)에 의해 전파의 손실없이 강한 신호가 수백Km까지 신호가 전달되는 특히 현상에 기인한다.
1961년 TV방송을 시작한 우리나라가 남해안지역과 경남지역에서 40여년이상 일본 방송의 피해를 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날로그방송 주파수를 선점 당한 우리로서는 어떤 문제제기도 할 수 없었으며, 남해안 지역을 따라 중계유선방송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런데 DTV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상파DTV 방송을 먼저 시작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주파수 사용의 우선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통부가 6월말 ITU에 DTV 방송주파수 등록할 때에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렵대륙과 맞닿아 있는 영국이 유일하게 주파수를 등록해 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우리나라 경남지역에서 DTV 방송을 시행할 경우 일본은 남부지역 35개 도시 71개 방송국이 우리나라 방송전파의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가 방송 우선 개시로 주파수를 선점하게 되면 주파수 배치 계획을 마친 일본은 우리나라 주파수를 피해 다른 주파수로 전면 재배치하거나 우리정부에 출력을 최소화해줄 것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월초 울산MBC의 DTV 전파 월경으로 다급해진 일본 총무성은 6월중순경 정보통신부에 긴급회의를 요청했으며, 일본의 상황을 미리 파악한 정통부는 6월말 ITU에 주파수 등록을 마쳤다. 이후 7월 8일 양국 정통부와 총무성간 비공식회의에서 일본은 경남지역 방송국의 DTV 주파수와 출력 등 방송재원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 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내 여론를 의식해 이같은 사실을 비밀에 부쳐 달라고 우리측에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간 DTV 주파수 경쟁 전망=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전파가 타국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성·AM 주파수에 대해서만 ‘First come First serve’ 원칙에 따라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국가에 대해 주파수 우선권을 보호해준다. TV방송 주파수인 VHF와 UHF 주파수에 대해서는 문제가 발생한 국가간 협의로 해결되는 것이 의례적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같이 협의가 어려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서비스를 먼저 시작한 국가에 기득권을 인정해준다. 방송을 먼저 개시한 우리나라가 주파수의 기득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절정에 이르고 있는 전송방식 변경 문제가 확대, 최종 변경하게 되는 상황이 닥치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어느정도 방송 지연이 불가피하다.이경우 일본이 남부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지상파DTV 방송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 주파수 기득권 포기는 물론 방송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형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전송방식을 변경해 1∼2년간 DTV 방송이 중단되고 일본측은 계획대로 DTV 방송을 실시해 우리보다 빨라진다면, 우리나라는 남해안지역에 일본의 전파 간섭으로 인해 방송송신소를 세워 서비스를 시작도 못하는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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