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반덤핑 사건이 마무리된 후 나에게 새롭게 부여된 임무는 산업기술과장으로서 신기술 중심의 산업정책 마련이었다. 수출 드라이브로 굳어진 정책방향을 기술 드라이브로 전환하는 것은 WTO 체제 하에서 시대적 과제였다. 기존의 정책을 기술혁신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산자부 장관 주재의 산업기술진흥회의를 상설화하고, 지방의 기술혁신을 지원하도록 지방회의도 열었다. 최근 참여정부에서 추진하는 국가기술 혁신의 시스템화와 지역 기술혁신 시책의 뿌리도 90년대 중반부터 태동한 셈이었다.
산업기술정책 추진과정에서 가장 의미있었던 것은 산업기술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이었다. 이 법은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었다. 우리처럼 연구개발자원이 절대부족인 나라에서는 기술 인프라가 선진국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인력·정보·단지 등의 인프라를 가장 경제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별도 정부출연사업을 마련했다. 이 법을 근거로 산학연 공동체 방식의 제반 인프라 구축사업을 벌이고, 기술확산시책을 추진했는데 특히 예산편성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됐다. 이 법의 제정으로 산업자원부는 기술 드라이브 정책의 주무부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나는 97년 본부국장으로는 최연소인 43세로 산업기술국장에 부임한다. 재임중 과천에서 벤처기업 제품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대통령 앞에서 처음으로 벤처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브리핑하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모 벤처기업 사장이 “국제 경쟁력을 갖도록 목숨을 바쳐 기술개발에 매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벤처기업이 그러한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좋을 것 같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산업자원부 장관이 휴맥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벤처기업 육성 특별조치법 제정 건의를 받고, 법률제정 작업이 시작됐다.
국장 재직시 2001 세계 산업디자인 총회를 유치한 즐거운 기억도 있지만 기술혁신의 거점인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이 지자체간 과열경쟁으로 이어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초 2개 시범사업을 수행할 계획이었으나 제한된 예산으로 처음부터 6개 지역을 선정하게 된데 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 97년 대통령선거 직후 선정결과를 발표했는데, 경북지역은 경북대와 영남대가 마지막까지 경합하여 인근지역에 2개 시범사업을 하게 된 반면 일부지역은 탈락하여 실망하기도 했다. 이후 중앙정부 지원과는 상관없이 전국 각 지역에 테크노파크 조성이 붐이 일었는데, 이제는 테크노파크가 지역혁신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나는 약 1년8개월 동안 기술정책을 담당하는 주무국장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최선을 다했다. 기술개발과 지역 기술혁신, 기술인프라 조성, 디자인 혁신과 산업 표준화 그리고 전자상거래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20여년 동안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상공관료로서 의미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진정한 행운이었다.
mgpaik@ip.kimchang.com
사진설명
디자인올림픽이라는 ICSID 총회를 유치하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표단과 환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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