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라는 일본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황제의 조건으로 능력, 시대적 필요성, 행운 등 세가지를 꼽았다. 따지고 보면 이 시대의 기업인과 관료, 그리고 정치인도 위의 요건이 들어맞을 때 성공과 함께 많은 일을 성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발돋움하는 20여년 동안 엔지니어들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이들이 정부나 민간에서 선진강국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한 것은 시대적으로도 요긴한 일이었지만 정부에서 그 역할을 부여받은 나에게도 커다란 행운이었다.
행운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어려서부터 대학 교수를 꿈꿔왔던 나에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활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실험시설 하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서울공대 학부시절과는 달리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집념이 담긴 KAIST는 교수요원·실험시설·기숙사 등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 아침마다 세면장에서는 밤새워 공부한 학생들이 코피를 쏟아내기 일쑤였다. 그곳에는 과학기술로 경제를 일으키자는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나는 당시 서의호 선배(현 포항공대 교수)의 강력한 권유로 출마해 학생회장이 되었다. 그때 과학원 학생회 일로 많은 훌륭한 분들을 만나게 됐는데 특히 당시 조순탁 원장님은 나에게 조언하시기를 “당신은 성격상 정부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향후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에서 새로운 공학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행정부에서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을 위해 뛰는 것은 더 큰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공대 출신이 무슨 공무원이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시 오원철 경제수석이나 최종완 공업진흥청장과 같은 분이 공대 출신이었므로, 이공계 전공자에게도 정부내에서의 역할은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갑자기 진로를 바꿔 정부의 기술관료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행정부에서 일하려면 행정고시나 기술 고시에 합격해야 하지만, 과학원 학위과정 생활은 별도의 고시 공부시간을 낼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졸업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매일 연구에 전념하고 장래문제에 대한 최종 판단은 유보하고 있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고 했던가. 78년 1월, 상공부에서 갑자기 과학원 졸업생을 10명을 특채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중화학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산업정책을 수행하던 그당시 이공계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므로 긴급수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과학원 졸업생의 인기가 대단히 높아 졸업생 수요의 10배를 넘는 산업계 수요가 있었다. 이당시 산업계에 투신한 졸업생 대부분이 신제품 개발의 선봉에 서서 80년대 산업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특허청 심사관으로 공직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mgpaik@ip.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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