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의 한 카페. 40여평 규모의 공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심각한 분위기가 한참 흐르더니 한순간 “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한쪽에서는 기쁨의 웃음을, 다른 한편에서는 아쉬움의 탄식이 쏟아진다. 그렇게 어느덧 2시간이 흐른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보드게임 카페의 모습이다. 보드게임 카페는 PC방의 뒤를 이어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잡을 만큼 급속도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2월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보드게임 카페는 올초 10여개에서 최근에는 150∼200개까지 늘었다. 불과 6∼7개월 만에 20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신림동 서울대 근처에는 4, 5개 정도의 보드게임 카페가 성업중이고 홍대앞에는 무려 15개나 몰려있다.
보드게임 카페는 음료수나 간단한 과자를 먹으면서 보드게임을 즐기는 공간을 말한다. 신림동을 비롯해 신촌, 홍대앞, 성신여대앞, 중앙대앞과 원광대, 전남대 등 지방 대학가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카페에 공급되는 게임도 매월 10여개씩 늘어나 국내에서 사용가능한 게임은 약 200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약 5만개 정도의 보드게임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드게임은 이미 해외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베스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가 경제 관련 보드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보드게임 카페는 IMF 직후 PC방이 대학가와 유흥가를 중심으로 확산된 뒤 점차 주택가 및 변두리로 영역을 넓혀왔던 것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비용을 제외하고 탁자와 테이블, 게임구입비 등 1억원이 채 들지 않는 초기투자비로 볼 때 오히려 PC방보다 확산속도는 더욱 빠를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보드게임 열풍은 대학가뿐 아니라 안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보드게임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 인터파크(http://www.interpark.com)의 경우 지난 어린이날 이후 매출이 2배씩 증가할 정도다.
보드게임은 보드(board)와 게임(game)의 합성어로 몇명의 사람이 모여 도구를 활용해 즐기는 게임이다. 장기나 체스, 고스톱 등도 넓은 의미에서 보드게임이라 할 수 있으며, 널리 알려진 불루마블이 대표적이다. 장르별로 보면 가족게임, 파티게임, 경제게임, 레이싱게임, 외교게임, 전쟁게임, 퍼즐게임, 문명건설/건축게임 등으로 구분된다. 1인용에서 10인용까지 참가인원도 범위가 넓다.
‘무너뜨리기’ 놀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젠가’, 도시건설을 위해 협력과 거래, 공격, 방어를 하는 전략게임 ‘세틀러 오브 카탄(SETTLERS OF CATAN)’, 땅따먹기와 바둑의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카르카손’ 등이 특히 인기다.
보드게임 카페를 찾는 층은 10대 청소년에서부터 40대 이상의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친구들끼리는 물론 가족 단위로도 찾아와 게임을 즐긴다.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시간당 1200∼2000원 정도의 이용료를 내고 게임을 선택해 즐기면 된다. 굳이 게임을 즐기지 않더라도 음료수나 과자가 저렴해 그저 이야기만 나눠도 된다.
보드게임 카페가 이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제까지 게임중독으로 인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논란이 돼온 PC방을 대체할 수 있는 놀이문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드게임 카페는 밝은 분위기에 기본적으로 음주와 흡연이 금지돼 있어 청소년을 비롯한 가족단위로 찾아와 즐기기에 적당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성고객도 상당히 많아 전체 이용자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다.
특히 한참 사회성을 키워가야 할 나이에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가상의 세계에만 몰입하거나 쏟아지는 음란물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는 청소년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 세대들은 보드게임 카페를 더욱 환영하는 분위기다.
딸과 함께 보드게임 카페를 찾은 한 주부는 “밝고 건전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음료수도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한층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재미재미’라는 프랜차이즈 보드게임 카페를 운영중인 (주)재미로 여는 세상의 김재일 이사는 “보드게임 카페는 밝고 건전한 분위기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이용자들이 많다”며 “보드게임은 여러명이 함께 즐기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성을 키워가는 데도 긍정적”이라며 보드게임의 교육적 효용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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