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이제부터 시작이다

 며칠 전 한 CEO가 들려준 얘기 하나.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날짜로 보면 1800일을 약간 웃돈다. 이것을 100일 단위로 쪼개면 골프의 18홀과 같다. 골프에서는 통상 첫 홀을 올 보기(all bogy)로 기록한다. 물론 파(par) 세이브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몸이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한 배려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때문에 첫 홀부터 OB(Out of Bound)가 나는 사람도 있고 뒷 땅을 치거나 토핑을 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아마추어 골퍼들은 첫 홀에 후한 인심을 베푼다. 또 올 보기로 서로 위안을 삼는다.”

 대통령의 100일도 골프의 첫 홀처럼 보기로 위로해주면 어떨까. 앞으로 17홀이나 남았는데 첫 홀부터 트리플 보기나 더블 파로 적으면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두번째 홀에서 티샷을 했는데 그 공이 러프에 처박혔다고 해서, 또는 숲속에 들어갔다고 해서 더블 파를 할 것이라고 단정짓지 말자. ‘나쁘지 않아(not bad)’라는 격려도 있지 않은가. 설사 더블 보기 이상을 기록해도 16홀이나 남지 않았는가. 잘 나가다가 중간에 OB를 내면 멀리건(mulligan)을 한번쯤 주는 것도 골퍼들의 인심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고 질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대통령)과 스트레스를 풀려고 라운딩하는 골퍼를 비교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그래서 이 CEO는 안타까운 민심을 골프를 통해 역설했다.

 짧다면 짧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참여정부는 드라이브 샷 하나 똑바로 날리지 못했다. 동북아경제 중심국가 건설에서부터 신성장동력, 이제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에 이르기까지 구호만 요란할 뿐 국민의 힘을 응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는 주 5일 근무제, 외국인근로자고용허가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안 등의 처리와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옴싹달싹 못하고 있다.

 현실을 다시 직시해보자. 정부가 꺼져가는 불씨(경기)를 다시 살려보겠다고 자동차특소세 등을 내렸지만 정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회사(현대차)는 노조파업 장기화로 해외 현지공장까지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웬스코닝의 해외공장 가운데 가장 손꼽히던 한국오웬스코닝 김천공장(유리섬유)은 노사분규로 문을 닫았다. 국내기업의 해외투자가 외국기업의 국내투자 규모를 앞지르는 것은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다. 올해들어서는 상반기에 그 갭(순유출)이 7억3710만달러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에 10억달러를 투자하면서도 국내 투자는 2억달러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의 올 보기나 멀리건은 없을 듯싶다. 골퍼 스스로 파 세이브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판이다. 허리띠를 바싹 조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명제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이제부터는 선택과 집중의 타깃을 ‘경제’에 맞춰야 한다. 그것도 분배보다는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한 장단기 실천전략을 짜야 한다. 10대 신성장동력만 해도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과의 함수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응집력을 모아야 한다. ‘중앙부처 국장급중 30% 이상을 이공계 출신에 배정하는 방안’(김진표 부총리)은 먼 훗날에도 우리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으로 정착돼야 오늘날과 같은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이제 막 회복조짐을 보이는 미국 경제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나락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