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후지쯔의 야마모토 명예회장을 비롯한 일본 전자업계 거물 1200여명이 오사카의 한 호텔에 모였다. 이들은 ‘마쓰시타 오반토’(일본식 여관을 책임지는 ‘반토’들 중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로 불린 다카하시 아라타로(향년 99세)의 고별식에 참석한 것이다. 다카하시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함께 현재의 마쓰시타를 일군 주인공이다.
마쓰시타는 소니와 더불어 일본 가전의 자존심이다. 매출규모도 두 회사 모두 70조∼80조엔으로 엇비슷하다. 단지 소니가 세련되고 젊어보이는 데 비해 마쓰시타는 무거운 전통의 띠를 두르고 있다. 다카하시는 바로 마쓰시타 전통의 상징이다.
나카무라 구니오(63)는 이런 무거움을 깨버렸다. 2000년 6월 마쓰시타의 CEO에 오른 그는 취임 일성으로 ‘파괴와 창조’를 내걸었다. 이듬해 마쓰시타 역사상 최대 개혁으로 꼽히는 그룹 재편 ‘S2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다. 전통은 옛것으로 돌리고 살아남기 위해 힘을 배양해야 한다는 전략, 즉 ‘전통의 대한 철저한 부정’인 셈이다.
그러나 전통을 깨는 진통은 적지 않았다. 그룹 재편은 마쓰시타통신공업 등 5개사를 완전 자회사로 ‘흡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마쓰시타통신공업의 가와다 사장이 나카무라 등 수뇌부를 비난하는 등 자회사의 반발은 끊이지 않았다.
나카무라는 “마쓰시타는 이대로는 10년을 견디지 못한다”며 정면돌파해 지난 1월 14개 사업도메인을 두는 신체제를 갖췄다. 1만3000명이 회사를 나가고 30여 공장이 폐쇄됐다. 나카무라는 ‘파괴왕’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제 옛 영화에 얽매이던 마쓰시타는 없다. ‘파괴’를 딛고 서서히 ‘창조’가 빛을 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세계 DVD리코더 시장의 50%를 장악했으며 차세대 TV인 PDP TV 분야에서도 파워를 갖추고 세계시장 30% 차지하고 있다. 또 카메라폰을 무기로 세계 휴대폰 시장의 새 강자로 부상 중이다.
묵묵히 파괴라는 쓴 약을 들이킨 나카무라는 최근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CEO)에 비견된다. 지난해 3월 닛케이비즈니스가 주가·경영이익을 기준으로 평가한 CEO 평점에서 이데이 회장은 ‘개선’으로 최고점을, 나카무라 사장은 ‘악화’로 불합격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올들어 약발(?)이 들어선지 닛케이산교신문은 나카무라 사장을 ‘V자 회복’의 대표적 CEO로 추켜세웠다. 반면 ‘매직’으로 불리던 이데이 회장은 신통력을 잃어버렸다고 평가절하했다.
‘전통’ 그 자체였던 다카하시 전 회장의 고별식에는 나카무라 사장의 분신인 무라야마 부사장이 참석했다. 그러나 다카하시를 흠모하는 지인 1200여명 중 아무도 무라야마 부사장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쓰시타 개혁의 공을 인정해 간사이국제공항 사장으로 취임하는 그를 격려했다. 이는 이들에게 나카무라 CEO가 ‘전통의 마쓰시타’를 계승하는 참된 방식을 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다카하시의 고별식은 마쓰시타의 새로운 탄생, 즉 ‘제2의 창업’을 의미하는 분명한 호상이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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