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그래픽카드의 양대 산맥은 누가 뭐라 해도 지포스로 대표되는 엔비디아와 레이디언으로 잘 알려진 ATi다. 물론 두 회사는 그래픽카드라는 같은 부품을 만들고는 있지만 다른 경영철학과 아키텍처의 차이를 갖고 있는 까닭에 직접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그리 적당한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인텔 펜티엄4와 애슬론XP를 비교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에 그래픽카드를 두 개 쓰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인가 선택을 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예전에는 3D게임에 강하다는 지포스와 멀티미디어에 강점을 갖는 레이디언이라는 비교적 단순하고도 확실한 구분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약점과 강점을 더욱 보강하면서 한결같이 빠르고 선명한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지나치게 늦은 지포스FX 시리즈의 출시로 고민하던 엔비디아가 새롭게 지포스 FX 5900을 선보이면서 다시 한 번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물론 ATi 역시 기존 성능을 더욱 보강한 새로운 레이디언 9800으로 수성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
기술적인 차이를 제외하고 제품의 겉모습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레이디언 9800 프로와 FX 5900 울트라다. 전체적인 겉모습은 분명 FX5900 울트라가 상당히 크다. 이는 전원부가 훨씬 큰 데다 레이디언 9800 프로와는 달리 각종 입출력을 위한 칩을 따로 쓰기 때문이다. 반대로 칩세트 자체에 이런 기능을 담고 있는 레이디언 9800 프로의 경우 특별한 칩을 따로 달지는 않는다. 덕분에 기판 크기가 작은 것은 물론 전원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부품이 없어 썰렁해 보일 정도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쿨러다. 다른 고성능 그래픽카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레이디언 9800 프로의 쿨러에 비해 지포스FX 9800 울트라는 상당히 큰 쿨러를 쓰고 있다. 제조공정은 오히려 FX 9800 울트라가 0.13μ으로 여전히 0.15μ 공정을 쓰는 레이디언 9800 프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열량이 적을 수 있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와 달리 높은 온도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쿨러가 큰 만큼 소음 등 물리적인 성질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와 함께 슬롯 두 개를 차지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는 것도 상대적인 단점이다.
다행히 기존 FX5800의 참기 힘들 정도의 소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음과 발열량이 많이 줄어든 것은 그나마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두 제품은 그래픽카드라는 것 말고도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외부 전원을 필요로 한다. 두 제품 모두 AGP 8배속 규격의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GP 전원만으로는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는 데 무리가 있다. 따라서 따로 외부 전원을 써야 제대로 작동하도록 돼 있다. 이는 GPU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소비량이 AGP 슬롯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력소비량이 많다는 것은 분명 상대적인 약점이다.
여기에 128MB와 256MB의 두 가지 버전이 선보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단순히 메모리 양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에 따른 각종 설정치가 달라지고, 옵션이 다르기에 상당한 값의 차이를 보이는 것도 같다.
메모리 인터페이스 역시 256비트로 같다. 덕분에 기존 그래픽카드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27.2Gb/s와 22.4Gb/s의 엄청난 메모리 대역폭을 갖추고 있다. 이는 256MB 기준이다. 결국 당대 최고의 그래픽카드로 해당 제조사의 기술력이 총동원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통점이다.
이런 최고급 그래픽카드의 대결은 단순한 성능의 비교를 넘어 그래픽카드시장의 판도와 앞으로 선보일 차세대 그래픽카드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은다고 하겠다.
레이디언 9800 프로의 판정승
전체적인 성능이나 그래픽카드의 중요한 요소인 화질에서도 레이디언 9800 프로는 앞선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아키텍처에서 앞서서라기보다 상대적으로 지포스FX 5900 울트라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지포스FX 5900 울트라는 좋은 그래픽카드다. 하지만 몇 가지 약점이 크게 보이고 상대적으로 레이디언 9800 프로의 장점을 앞서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그동안 지포스만의 장점이던 빠른 3D 속도, 게임의 최적화 등은 이제 결코 지포스만의 장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얼마 전에 선보인 지포스FX의 단점을 많이 보강했지만 앞으로 이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드라이버의 개선으로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레이디언 9800 프로는 당대 최고의 그래픽카드라고 하기에 부끄럼없는 성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일부 오픈GL 관련 항목에서 뒤지는 성능을 보이는 것은 GPU가 제 성능을 발휘하는 데 아직 메모리 대역폭 부족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는 드라이버 개선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메모리 대역폭의 문제를 해결한 후속제품이 선보일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이렉트X 9.0 이상에 최적화된 성능에서 비록 지포스FX 5900 울트라를 앞서기는 하지만 일부 세부항목에서는 좀더 발전된 모습을 필요로 한다.
지금은 최고의 제품들이지만 앞으로는 대중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좀더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분석=김영로 tester@computer.co.kr
정리=이규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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