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백우현 LG전자 사장(4)

나는 캔데선트사를 직접 방문한 결과 이들의 양산 기술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투자요청을 거절했다. 반면 한창 이 기술에서 가능성을 찾던 소니는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나는 이를 보고 ‘과연 나의 투자 거절 결정이 적절한 것이었던가’라는 의구심과 중압감에 빠졌다. 혹시라도 나의 결정이 그른 것이었다면 회사에 엄청난 누를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캔데선트사가 디스플레이 양산에 실패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 초 준공된 서울대 연구공원내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는 CTO인 나의 주된 활동무대다. 박종석 디지털TV연구소장을 비롯한 많은 연구원들은 나의 작업동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임 초기 우면동연구소 시절엔 일화도 많았다. 초기 연구소에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연구원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나 문제점들을 구체화해 보고·토론하는 것은 미흡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총론보다는 각론’이 중요하다는 모토와 함께 주요 프로젝트의 경우 목표, 스펙 등 구체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개발 현장에서 일선 엔지니어들과 시제품, 도면 등을 가지고 격론을 펼쳤던 기억이 새롭다.

 이 과정에서 나는 연구원들로부터 ‘백 주임(연구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처음엔 이들과 오해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CTO와 일선 연구원들간의 격의없는 토론이 결국 교감을 가져다 준 중요한 계기가 된 기억이 새롭다.

 CTO인 나의 직책과 관련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나는 많은 연구원들로부터 CTO의 원뜻인 최고기술책임자인 ‘Chief Technology Officer’ 대신에 최고 테스트책임자란 뜻의 ‘Chief Testing Officer’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품개발 관련 연구원들과 생활하면서 깊이 느낀 점을 소개하자면 기술적인 우수성 중심으로만 제품을 개발해 연구소에서 좋다고 해도 반드시 시장에서 환영받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지금도 우리회사에서 개발한 모든 제품을 출시 이전에 테스트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집에 두고 테스트하기도 한다. 연구원들의 ‘최고테스트책임자’란 별명은 사실이다.

 나는 CTO 부임 이후 IMF사태의 위기 속에서도 ‘연구개발 경쟁력의 원천은 우수 연구원 확보’라는 신념아래 핵심 연구원에 대한 동기부여·인센티브 프로그램 등을 강화했다. 또 디지털TV연구소를 서울대 연구공원으로 이전하는 등 연구환경 개선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이 벤처 붐속에서도 우수 연구원 이탈을 막고 궁극적으로 LG전자의 디지털TV가 경쟁 업체를 앞서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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