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굼뜬 증권업계

 “금융권 가운데 증권업계는 경영 측면이든 IT 측면이든 컨설팅을 받지 않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지난 수년 동안 금융컨설팅을 담당해온 한 컨설팅회사 사장의 말이다. 물론 ‘컨설팅을 받아야 선진화된다’는 컨설팅 제일주의를 따르자는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금융컨설팅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획일적인 결과만을 초래한 면도 없지 않다는 비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업계가 컨설팅을 안받는 이유는 이러한 분석에 의한 선택이라기보다는 변화를 꺼리는 보수적인 색채에 근거한다. ‘2∼3년 벌어 10년을 먹고 산다’는 증권업계에 퍼져 있는 속성이기도 하다.

 최근 증시가 조금 호전되는 것에 혹해 불과 며칠 전의 어려움을 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쯤되면 몇개월에서 1년 이상의 호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동안의 어려움은 금방 사라질 것이란 기대를 갖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문제는 상황이 이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온라인거래 활성화에 따른 수수료는 점차 낮아지는 반면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 정보시스템 투자비용은 갈수록 늘어난다. 이러한 고비용 구조 때문에 증시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이전처럼 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금융업이 갈수록 대형화·겸업화되며 증권업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여전히 굼뜨다. 다른 금융권과 비교할 때 신상품 개발현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제1금융권에서 주가지수 연동형 상품을 잇따라 내놓는 데 비해 증권업계는 구경만 하고 있다. 여전히 매매 체결에서 얻는 수수료만으로 살아보자는 것일까. 따져보면 주가지수 연동형 상품처럼 증권업계가 자신있는 분야가 또 어디 있겠는가.

 현 상황을 기회로 보고 변화를 준비하는 증권사도 있다.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위해 기업 정체성을 재정비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1∼2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영업 프로세스를 개선하려는 곳도 있다. 심하게 들리겠지만 국내 60여개 증권사 중에서 몇개가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말도 들린다. 부지런해져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경제부·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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