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kyung@ee.kaist.ac.kr
과학기술은 한 나라의 존립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다스릴 때 없애려 한 것이 세가지인데 그것은 말, 이름, 그리고 공학이다. 일제가 공과대학을 안만든 이유다. 과학기술을 먹거리의 수단으로만 보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과학기술, 특히 공학은 시장에서 응용되어 직간접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데 사용되어야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과학기술정책에는 교육과 연구뿐 아니라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진입하는 가능성과 경제에의 영향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의 과학기술 기획사업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무슨 연구분야에 얼마를 어떤 명목으로 몇년간 투자하는가에 집중되는 것 같다. 산학연 협력의 모양을 내기 위하여 대학에 전체 연구비의 작은 일부를 할애하거나, 이미 그 분야의 선도기업을 끌어들여서 연구의 성공을 담보하려 한다. 연구의 실제 결과물보다 성공이라는 평가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 국가의 연구비에 대한 인식은 흔히 ‘임자 없는 돈’ 혹은 ‘눈먼 돈’이라 하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낮아져 있다. 이러한 거품을 없애기 위해서는 연구사업의 기획과 평가가 그 분야의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에 의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전담직으로 전격 위임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연구기획 평가비도 전연구비의 5% 정도로 높여 돈을 더 들이더라도 국내외를 불문하고 세계적 전문가들을 활용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그 부분을 가장 잘 맡아 할 수 있는 최고 전문가에게 권한 책임 및 최대한의 측면지원을 해주며 일을 시키자는 것이다.
국가의 연구사업에서는 연구종료 이후에 그 분야의 선두주자인 산업체가 장기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산학연 협력 구도가 이뤄져야 한다. 당장 기업체가 상품화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5∼10년 후에 기업체가 상품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국가 과학기술 지도 구축과 지속적인 갱신체계가 필요하다. 국내외 전문가를 총동원하고 예산과 기간과 방법 면에서 획기적인 사고의 도약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기술 수준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현행 국책연구사업의 기획과 평가에 자원을 전폭 투입하고 체계를 효과적으로 개혁하는 내용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같은 노력을 들이고도 모든 개별 연구의 효율이 한층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업적평가와 예산지원 기준이 아직도 발표한 논문 편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기술 연구인력 양성과 같은 복잡한 일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 평가라는 명목 하에 숫자에 의존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다.
과학기술 기본계획에는 당장의 연구개발뿐 아니라 장기적 과학기술인력 양성문제와 작금의 이공계 기피 심화현상에 대한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대안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공계 지원자 수의 감소보다는 질의 저하에 있다. 지금처럼 실력도 의지도 없는 학생들에게 억지로 국내외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공계 고급인력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을 좋은 일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좋은 학생을 입학시키려는 노력보다 어떻게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게 가르치며, 졸업 후에 진로에 대한 밝은 비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공계 기피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당연히 이 부분에 국가의 과학기술 자금이 투입되어야 희망이 있다.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은 교육, 연구개발, 기업활동과 자금순환까지의 모든 부분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전체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유능하고 헌신되고 자세가 바르고 투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각 분야마다 필요하다. 그에게 전권을 주고 그가 가진 목표와 전략에 의해 전국의 모든 인적, 물적자원이 전격 가동되어야 한다. 아무리 위원회가 많고 계획이 많아도 탁월한 헌신된 사령탑이 있어야 오케스트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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