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정보시스템의 기초

◆이화식 엔코아정보컨설팅 대표 hslee@en-core.com

‘안전불감증’

대형사고가 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다. 철저한 설계와 토대 없이 잦은 설계변경과 ‘땜빵’식 날림공사가 가져온 이 시대의 산물이다. 유럽에서는 100년 이상 된 건물이 수두룩하지만 우리나라에는 20년이 갓 지난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위해 줄지어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건설현장은 형편이 났다.

설계오류 때문에 신축건물이 무너지거나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첨단산업인 기업의 정보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건물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계(architecture)에서부터 원천적 결함이 있는 시스템을 이리저리 엮어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마무리한 날림공사가 허다하다.

 정보시스템 관련 종사자라면 기한과 품질을 제대로 준수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설계가 잘못된 시스템은 이후 프로그래밍을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게 된다.

 기업 정보시스템의 핵심은 회사의 모든 업무에서 발생하는 IT 인프라의 근간인 이른바 ‘데이터(DATA)’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업의 고유 활동인 비즈니스는 ‘데이터’로 표현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은 그러한 데이터를 저장·유통·활용하는 보조장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는 작업이야말로 정보시스템의 성패를 좌우하는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김포, 파주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계획도시로 성공할지의 여부는 논외로 하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EA(Enterprise Architecture)를 비즈니스 설계(BA), 애플리케이션 설계(AA), 기술적 설계(TA), 데이터 설계(DA) 네가지 축으로 나누어 신도시 개발계획에 접목시켜 보자.

 우선 도시 내부와 외부의 공공·기업·가정이 각각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역할을 설정하는 일은 BA(Business Architecture)로 볼 수 있으며, 이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수단인 AA(Application Architecture)는 도시의 금융·교통·통신·환경보전·도시방재·의료·공공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일로 표현할 수 있다. 또한 교통법규·ATM단말기·교통신호기·통신기술 등의 기술적 요소를 설계하는 작업은 TA(Technical Architecture)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터에 대한 구조를 체계화하는 DA(Data Architecture)는 무엇이 될 것인가. 바로 토지·건물·주택·생활권·인구·주거지역· 상업지역·상권·도심·부도심·공원녹지·도시구획·도로교통망 등 기본적인 도시설계를 계획하고 세우는 일이다. 따라서 EA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 응용이나 기술 이전에 가장 먼저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DA인 것이다.

 근원과 원천, 골격(骨格)이란 말에는 근본적으로 구조(architecture)가 잘못되면 커다란 혼란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통적체가 심각한 도로라면 신호체계를 변경하거나 신호등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과거 병목현상이 심각했던 한남대교 남단은 근본적인 설계를 변경시키고 나서야 개선이 되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앞서 비유한 신도시 개발을 상기한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작업인지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껏 잘못된 설계로 인한 ‘선천성 불구 시스템’ 탓에 불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낭비했다면 이제 새롭게 구축하는 마당에는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할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글귀에서 ‘데이터IT지대본(之大本)’이 자꾸만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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