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용 동국대학교 컴퓨터학과 교수 byunjy@dongguk.ac.kr
올해도 남북 언어정보산업표준 관련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2002년 베이징 회의는 북한의 사회과학원을 중심으로 우리말규범을 주제로 회의를 하였고, 올해는 북한의 과학원을 중심으로 언어관련 정보기술 및 정보처리를 중심 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 회의는 비정치적인 남북 학자들간의 회의이며, 이 회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남북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관심있는 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정보처리와 결부해 파악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서로의 성과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교환하고, 장차 본격적으로 남북경제협력에 따르는 정보교환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간 이 회의에서 다뤄온 중점 주제는 우리말 규범, 자판, 문자코드, 용어 등이었으며, 지난해 베이징 회의에서 언어처리 분야를 추가했다. 그동안 가시적 성과로는 용어분야에서 94년 첫 회의가 있은 후 다섯번의 회의를 통하여 ISO2382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기술용어사전이 두차례에 걸쳐서 출판되었다. 자판분야는 양측 학자들이 조사한 자모의 빈도 수 자료를 교환하고 시안을 가지고 협의를 진행하는 상태다. 우리말규범 분야는 언어정보를 다룸에 있어서 관련 국어학자들이 의견을 나눠왔는데 자모순 부분은 이미 양측에서 널리 사용하는 터라 이것도 단일화하기는 어려우며, 한글은 자형순, 조선글은 음가순이라는 점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언어처리 부분은 양측이 이미 개발한 소프트웨어 부분은 공유하자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 소프트웨어 표준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논의하고 있다. 문자코드 분야는 한글과 조선글의 자모 순서에 의존하기 때문에 문제를 좁히기가 어려운 점을 상호 잘 알고 있다. 특히 국제표준에서 한글코드가 유니코드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유니코드가 가진 역할을 생각하면 북한으로서는 매우 답답한 상황에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북한에서 국제표준기구에 이의신청을 한 바 있으나 이제는 국제표준의 성격상 남북이 합의하더라도 변경이 쉽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모순이 다른 점이며, 이것은 문자코드가 다른 이유와 연결돼 있다. 북한의 문자코드 표준은 94년 회의에서 조선국규 KP 9566-1993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96년 회의에서 그 내용이 남측 대표단에 전달됐다. 그리고 97년에 KS X 1001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개정이 되고 2000년에 부분 개정이 있었다. 현재 조선국규 KP 9566은 ISO에 ‘정보교환용 두 바이트 조선글부호’로 등록되어 있다. 지금 개인용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유니코드 이전의 체제에 있기 때문에 KS X 1001과 KP 9566의 사용은 피할 수 없으며, 그 내용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낱자음 19자, 겹자음 11자, 모음 21자는 같고, 옛글자모는 남은 42자, 북은 65자로 다르다. 또한 음절에서 남은 2350자, 북은 2675자인 데 KP9566의 325자는 KS X 1001에 처음 나왔을 때 학자들이 지적했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약 320자 정도가 부족하다는 내용이 비슷하게 반영되어 있다. 한자는 남이 4888자이고, 북이 4653자다. 그 외에 같은 것으로 외국문자로는 로마자·그리스문자·러시아문자·일본문자 그리고 숫자는 아라비아·로마숫자 대소문자가 각 10개씩이다. 그리고 특수문자는 간격·기술기호는 같고, 괄호·학술·단위기호 문자는 북측이 많으며, 일반기호는 남측이 많다. 여기서 중요한 사항은 한글과 조선글에서 비록 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코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의 해결책은 단기적으로는 한글조선글 변환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코드를 단일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의 성과는 비록 비정치적인 분야라 할지라도 제약과 오해의 소지도 많았지만 회의가 거듭될수록 서로 조심함으로써 그런 문제들은 줄어들었다. 그것은 상호 의사표현 방법과 접촉방법을 알게 되고 관례를 만들어온 덕분이다.
현재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 활동은 우선순위로 보아서 남북이 가능한 사업으로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분야부터 시작하여 가까운 장래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주제들이며 이들 분야 사업의 성공을 통해 정보산업 전반의 표준화로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남북간 회의에서 성급한 가시적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으로 본다. 회의 참석자들은 엄연한 실정법 아래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잦은 접촉이 발전하게 되면 관련 법률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비록 가시적 성과는 미미하다 할지라도 미래의 큰 성과를 위하여 징검다리를 놓는 심정으로 성의를 다하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근본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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