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이달 말쯤에는 통신정책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할 모양이다. 그동안 정통부는 통신시장 현안에 대해 뒷짐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지난달부터 ‘6월 통신정책 방향 확정’이라는 말을 몇차례 내비쳤다. 지난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통신서비스 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을 이달 말께 확정해 하반기부터 세부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 장관의 이날 발언 중에는 특히 통신3강 정책에 대한 ‘유동적’ 입장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통신정책당국이나 업계의 정서가 통신3강으로 굳혀져 온 시점에서 “통신3강 정책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진 장관의 발언은 핵폭탄과 같은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효경쟁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통신3강을 못박은 것은 이상을 쫓는 현실의 모순일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정부가 통신3강 정책을 수정한다면 현실적으로 4강, 5강보다 2강으로 좁혀짐을 의미한다. 이 경우 우선 데이콤을 중심으로 파워콤·LG텔레콤 등 유무선 통신사업자를 한데 묶어 통신3강에 진입하려는 LG그룹의 행보에 커다란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미 LG텔레콤이 건의한 단말기 보조금 차등지급에 대해 정통부는 불가 입장을 보이는 등 통신3강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그러나 2개 사업자가 국내 통신서비스시장을 지배(독과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데 대한 논란은 앞으로 거세질 전망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통부는 주파수 경매제의 도입을 통해 통신서비스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주파수 경매제가 도입될 경우에도 여기에 뛰어들 기업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통신서비스시장은 기본적으로 국가 자산인 주파수에 바탕을 두고 있어 정부정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완전경쟁시장 원리에 의해 통신서비스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만큼 통신서비스 정책이 갖는 국가 경제적 의미가 지대하다. 이런 측면에서도 새 정부가 각종 비대칭규제나 차세대 통신서비스 정책 등에서 통신서비스시장의 유효경쟁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통신3강 정책의 변화는 주무장관의 시각에 따라 좌지우지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통신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통신3강 정책 변경을 전문가 토론과 같은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고 장관이나 주무부처의 의지에 따라 메스를 가한다면 어느 누가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장관이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 차기 정통부 장관이 통신3강 정책으로 회귀하거나 또다른 변화를 준다면 통신산업은 물론 전후방 연관성이 높은 IT산업 전체까지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WCDMA와 관련, 통신장비업체들이 수요예측을 잘못했다는 진 장관의 지적에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정부가 정해놓은 서비스 일정보다 더 정확한 수요예측을 어디서 찾으라는 얘기인가. 지금도 장비업체들은 올해 말까지 서울지역에서 WCDMA 상용서비스를 실시하겠다는 정부정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정부와 통신사업자들의 말 바꾸기에 질렸다”는 장비업계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여 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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