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룽즈젠

 중국 최대 재벌인 룽즈졘(榮智健·61) 중신타이푸그룹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M&A)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방직 재벌이라는 집안의 후광을 입고 홍콩으로 건너가 전자시계와 완구 등을 생산하는 전자회사를 설립했지만 몇년 후 기업을 처분하면서 투자액의 50배가 넘는 돈을 챙겼다. 이후 82년에는 미국에서 200만달러를 투자해 소프트웨어설계회사를 설립, 1년 만에 뉴욕증시 상장과 함께 40배가 넘는 이익을 남겼다.

 룽즈졘은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의 홍콩 자회사인 중신타이푸그룹을 맡은 후에는 M&A에만 전념한다. 지난 87년 영국계 캐세이퍼시픽항공 지분 12.5%를 인수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어 홍콩 최대 상장기업인 홍콩텔레콤의 지분 20%를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라서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M&A의 귀재’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으며 오늘날 61억6000만위안(약 9200억원)의 재력가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0년대 중반 김범훈씨가 자본금 10억원에 설립한 옥소리를 한솔그룹에 70억원에 팔아 화제를 불러모았다. 벤처연방을 꿈꾸던 전 메디슨 회장 이민화씨는 40여개 회사에 투자해 한때 시가총액 1조5000억원대를 넘었다. 그러나 이들은 룽즈젠 회장처럼 M&A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벤처투자에 열을 올리던 대기업들도 지금은 쓰라린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나 있는 실정이다.

 이제 다시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벤처기업 M&A 활성화에 목청을 높이고 있다. M&A를 통해 자연스럽게 벤처기업의 체질 강화를 유도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민간의 움직임은 아직 싸늘하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이 M&A를 여과없이 담아내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주식교환에 따른 양도세나 과제·문제 등이 쉽게 해소될지도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M&A로 돈을 버는 데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등 부정적 시각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룽즈졘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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