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日 슈퍼컴 투자 `속 뜻`

 세계 최대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일본의 ‘어스 시뮬레이터 센터(ESC:Earth Simulator Center)’를 처음 본 느낌은 ‘압도’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대전 KISTI 내 슈퍼컴퓨팅센터나 기상청 슈퍼컴퓨터실 전경이 교차됐음은 물론이다. 사실 스케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본 ESC 슈퍼컴퓨팅센터에 대한 놀라움은 단순히 그 규모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SC 가동의 가장 큰 의미에 대해 “슈퍼컴퓨터사업이야말로 정부가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갖게 된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답하는 ESC 센터장의 말은 일본 정부가 센터 가동 이후에도 그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에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 뒷받침하고 있다.

 전세계 슈퍼컴퓨터 진영을 놀라게 한 일본의 거대작품인 ESC에 대한 많은 얘기 중 하나는 ‘대의명분 뒤에 감춰진 일본 정부의 IT기업 지원전략’이었다. 97년 당시 400억엔이 투자된 결과, 일본 NEC는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호기를 잡았고, 무엇보다 다 쓰러져가는 벡터형 슈퍼컴퓨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조금이라도 꼬리만 잡히면 WTO 조항을 드리밀며 우리 정부의 민간기업 지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미국 역시 일본 정부의 이같은 행보에 질세라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달아 발주하며, 크레이라는 슈퍼컴퓨터 전문기업 살리기에 공공연하게 나섰다.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이들 정부의 슈퍼컴퓨터에 대한 접근방식, 나아가 IT선진국이라는 이들이 어떤 ‘편법’과 혹은 어떤 ‘명분’을 내세워 자기네 기업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놓고 민간기업에 지원할 수 없으니 명분을 만든 것이지요. 우리도 좀 약삭빠르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인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센터 방문에 앞서 일본 정부의 ‘숨은 뜻’을 귀띔해주었던 기상청 슈퍼컴퓨터 관계자의 말이 떠오른다.

<요코하마(일본)=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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