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벼룩시장 그곳에 가면 `벼룩`도 있다

 올해로 8년째를 맞은 용산 벼룩시장은 용산전자상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둥지를 틀었다. 주말이면 용산의 나진·선인· 원효·터미널전자상가 등 대부분의 전자상가에서 벼룩시장이 선다.

 이 가운데 96년 처음 벼룩시장을 연 선인상가와 97년 개설한 나진상가는 가장 활발한 상권이 형성된 곳. 특히 나진상가 19동과 20동 사이에 있는 벼룩시장은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선인상가의 경우 장이 설 자리가 넓지 않아 27개의 매장이 들어서지만 나진상가는 길게 늘어선 사잇길로 40개 점포가 들어서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용산 벼룩시장은 누구나 자신의 물건을 맘대로 늘어놓고 팔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용산 벼룩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주로 중고와 이월된 신상품이 뒤섟인 첨단제품인 탓에 상거래의 책임을 위해서도 누구나 물건을 팔 수는 없는 일. 벼룩시장 출점 매장은 해당 상가에 소속돼 도매업을 병행하는 업체 가운데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해당 매장을 찾아가 명함을 내밀면 교환이나 반품이 가능하다.

 개점시간은 첫째·셋째 일요일을 제외한 매주 토·일요일이며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시장에 들른 후 주변의 먹거리를 찾는 것도 쇼핑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방법이다.

 해장국, 가정식 백반 등 상가 주변의 식당에서 재래식 시장 분위기를 즐기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깔끔하고 간단한 식사를 원한다면 전자랜드 4·5층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하면 된다.

 토요일 오전 11시. 용산 선인상가 21동 앞과 나진상가 19·20동 사잇길.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용산 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날 서는 벼룩시장에서 판매할 물건을 진열하기 위해서다.

 경기불황으로 인해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자 중고품을 파는 벼룩시장과 재래시장으로 향하는 서민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반나절의 발품팔이면 손때가 묻은 중고PC 제품이나 이월된 상품을 시중 가격의 절반에 살 수 있으니 벼룩시장은 요즘처럼 가벼운 주머니에 적절한 쇼핑 장소다.

 가격 말고도 사람 냄새 나는 상인들과의 정겨운 입담과 볼거리는 온라인에서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중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벼룩시장의 장점은 무엇보다 구입자가 원하는 제품을 값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

 15인치 신품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모니터가 20만원, 최신식 20기가 컴퓨터 본체가 30만원대, 휠마우스나 범용직렬버스(USB) 키보드는 1만원 이하, 비디오카드는 3000∼5만원 선.

 TFT LCD 모니터의 경우 최소 35만원은 줘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중가에 비해 3분의 2에도 못미치는 가격이다.

 키보드나 비디오카드 등도 시중가의 절반에 불과하다.

 창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는 미국인 존 매컬리씨(23)는 지방에서 제값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 많아서 가끔 서울 나들이 때면 꼭 용산을 찾는 단골손님이다.

 그는 “용산 벼룩시장은 제품도 다양하지만 가격이 지방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30% 이상 저렴해 이곳을 자주 찾고 있다”며 벼룩시장에 대한 매력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장은 시대를 담는다=이곳에서 취급하는 물건도 다양하다.

 IP공유기, 허브, 모니터, TV수신용 카드, 프린터, 휴대형 USB 메모리카드, 키보드, 조이스틱 등 컴퓨터 관련 제품에서 미니 오디오, CD 및 DVD 타이틀, 우퍼 스피커, 이어폰, 면도기 등에 이르기까지 벼룩시장에 취급하는 품목은 수백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잘나가는 제품은 USB 메모리카드, MPEG보드, TFT LCD 모니터 등. 벼룩시장의 한 상인은 “최근들어 MPEG보드·TV수신카드·스피커 등의 판매율이 좋아지고 있다”면서 “컴퓨터의 기능이 단순히 워드나 게임기 수준에서 영화·TV를 보고 음악을 듣는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조되면서 관련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립품 PC도 인기품목 중 하나다.

 중고PC의 경우 대부분 30만∼50만원선에 살 수 있으며 최신 모델이 나오면서 이월된 컴퓨터는 할인율이 30%에 달한다.

 벼룩시장에서 이색적인 상품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잉크젯과 레이저프린터에 밀려난 독특한 도트프린터는 틈새시장으로 남아있다.

 여전히 두장 이상의 인쇄가 필요한 세금계산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나의 컴퓨터에 두대의 모니터를 함께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듀얼 비디오카드도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탓에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 물건이다.

 고객층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 젊은이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용산 벼룩시장은 요즘 컴퓨터 기기와 부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중년고객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컴퓨터는 더 이상 신세대 젊은이들만의 점유물이 아니라는 증거다.

 거리에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쉽게 눈에 띈다.

 ◇벼룩시장의 명암=표면적으로 벼룩시장은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에 차 있었지만 상인들의 얼굴에 미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침체의 바람이 용산상가에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벼룩시장의 한 상인은 “3년 전에 비하면 오가는 손님들이 절반 수준밖에 안되는 것 같다”며 “IMF 때보다 발걸음도 뜸하고 가격을 물어봐도 사려는 사람들은 적어졌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만큼 경기침체가 경제 구석구석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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