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12)탈북자 정보화교육

 정보문화진흥원의 ‘북한 이탈 주민 정보화 교육’은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 온 사람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기본소양을 갖추고 사회생활 및 취업에 필수적인 컴퓨터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4월 7일 4개월 과정으로 처음 개설됐으며 31명의 북한 이탈 주민이 오전·오후 2개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컴퓨터 활용 2·3급 자격증 대비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교육을 담당하는 박문우씨는 “컴퓨터와 영어가 생소한 북한 이탈 주민들은 정보화 교육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며 “이들의 상황에 맞는 교육을 통해 정보격차를 해소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 과정은 8월에 개강하며 7월부터 수강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교육내용은 상황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e메일을 보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시종 활기차게 말을 이어가던 탈북자 홍수진씨(가명·30)의 눈가에 얼핏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한 탓일까.

 잠시 머뭇거리던 홍씨는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활기차게 말을 이어간다. 그의 소원은 북에 남아 있는 동생들을 데려오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여기는 기회가 있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것 이상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정보문화진흥원이 진행하는 ‘북한 이탈 주민 대상 정보화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탈북의 최대혜택은 삶에 대한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곳까지 와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우는 것도 역시 기회이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남보다 2배 이상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지만 여기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첫 느낌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고 이들은 회고한다. 무엇보다 업무의 기본이 되는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북한에서 기업체 회계 책임자를 지냈던 하선희씨(가명·41)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도 답답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되레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주어진 기회를 살리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땄고 엑셀 사용법도 배웠다. 북한에서 그랬듯이 여기서도 전문가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다. “밑바닥부터라도 좋으니 일을 하고 싶다”며 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탈북자 대부분은 북한에 있을 때 컴퓨터를 본 적도 없다. 인터넷을 해본 적도 없다. 일을 하고 기회를 얻기 위한 기본무기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남한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보화 교육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탈북자들이 정착교육을 받는 ‘하나원’에서 일부 전산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타자 위주의 초기 교육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의 재취업 교육과정도 컴퓨터에 생소한 탈북자들이 남한 사람들과 섞여서 받다 보니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홍씨는 “남한 사람들과 함께 배울 때는 북한 출신 티내는 것 같아 질문 하나 하기도 어색했는데 정보문화진흥원의 교육은 탈북자들로만 구성돼 동질감이 생기고 마음도 편해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이 다른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도 영어도 낯설은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나와 사회에 홀로 섰을 때 생업에 쫓기다 보면 정보기술(IT) 활용은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탈북자 정보화 교육을 담당하는 정보문화진흥원 박문우씨도 “탈북자 중 30% 정도만 제대로 된 컴퓨터 활용교육을 받는 것으로 추산될 뿐 나머지 탈북자는 IT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남한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는 공식적으로 약 3100명. 지난해만 1000여명이 들어왔고 올해 벌써 400명이 입국했다. 아직은 많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년 새에 계속 급증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현재 북한을 떠나 중국·러시아 등지에서 떠도는 10만여명의 이탈 주민 중 상당수는 결국 남한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통일이 되거나 왕래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면 일자리를 찾아 북에서 남으로 오는 사람들도 크게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굳이 탈북자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대거 몰려올 경우 컴퓨터를 활용할 수 없는 이들이 정보화에서 소외돼 ‘정보격차의 게토’를 형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바탕으로 지식경제 체제로 도약하려는 나라의 주요 경제활동층이 정보소외 계층이 되는 역설적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탈북자들에 대한 기업들의 수용인식이다. 아직은 낯설은 이방인으로 취급되다 보니 어느 곳이든 발붙일 곳이 만만치 않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50여년 단절의 잔재가 마음속 남북의 경계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가 닿으면 열심히 일하고 싶은 탈북자들에게 높은 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고 장기적으로 이들에 적합한 정보화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구상 아래 북한 이탈 주민 정보화 교육은 진행되고 있다. 교육에 참여하는 이탈 주민들의 열성적인 모습에서 정보격차에 대한 우려는 씻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정보격차 이상으로 먼저 해결해야 할 마음속 단절의 벽은 아직 미궁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북한에서 공예일을 했던 김미선씨(가명·31)는 메이크업 쪽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고 싶어한다. 하씨는 갖고 있던 전문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현재 관련 컴퓨터 지식을 착실히 쌓고 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의 열성을 남한 사람들이 오히려 못 당할 것”이라며 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엇보다 이들은 정보화의 편리함을 조금씩 느끼고 생활화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처음에는 컴퓨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새벽에도 컴퓨터실을 찾곤 했다”는 홍씨는 어느새 인터넷 뱅킹으로 은행일을 처리하고 e메일로 중국의 친지들과 소식을 교환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e메일로 북의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 받게 될 때쯤엔 통일도 그만큼 가까워져 있을 것 같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인터뷰)탈북자 하선희씨(가명)

 “전문가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정보문화진흥원의 교육장에서 만난 북한 이탈 주민 중 하선희씨(가명·41)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교육생이 20∼30대인 강의실에서 40대는 하씨밖에 없는 듯했다.

 하씨는 북한에서 국영 기업체의 회계 책임자까지 지냈던 엘리트 계층이다. 남한에 내려온 후에도 하씨는 전문지식을 살려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씨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지낼 수도 있지만 이왕 남한에 온 만큼 최선을 다해 나의 길을 찾고 싶다”며 정보화 배우기에 열중이다.

 그의 노력은 남다르다. 컴퓨터 없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1년 남짓한 남한 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벌써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에 컴퓨터 활용 2급 자격증을 땄다. 북한에서 했던 세무·회계 관련 일을 하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엑셀도 공부해 이미 수준급의 실력을 갖췄다.

 하씨는 컴퓨터 활용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회계원리나 세무법 같은 것은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던데 컴퓨터 배우긴 정말 힘들었다”는 하씨의 말엔 고달팠던 1년의 기억들이 묻어 나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다. 북한에서 온 40대 여성이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하씨는 “밑바닥부터 시작할 자신도 있다”며 “기회만 달라”고 말한다. 그는 또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정착금 얼마 주는 것보다 필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취업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하선희씨 등 취재에 응한 북한 이탈 주민들의 신분노출을 우려, 부득이하게 실명과 얼굴 사진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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