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눈치보기 급급 통신업계 `투자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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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IT벤처와 컨설팅 업체들로부터 ‘봉’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신규 사업에 적극적이었지만 지금은 격세지감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예전같으면 10억원 미만의 예산집행은 실무 과장·대리급이 사실상 결정했지만 요새는 사업본부장부터 몸을 사린다.

 10억원을 넘어가는 사업은 대부분 사장 결재를 거친다. 방만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좋지만 이러다 업무 의욕만 꺽은 채 보신주의가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SK텔레콤 모 과장)

 “올해 전체 마케팅 비용은 작년보다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계획대로 가고 있다. 정확한 수를 말할 수는 없으나 지난해에 비해 분명히 줄 것이다. 5월부터 EV-DO 마케팅을 강력히 추진할 생각이지만 보조금 등 마케팅 비용은 올릴 생각이 없다. 단말기 가격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KTF 콘퍼런스콜에서 홍영도 재무실장)

 요즘 통신업계의 썰렁한 투자분위기를 반영하는 말들이다. 지난 6일 콘퍼런스콜을 가진 SK텔레콤 표문수 사장은 투자와 관련해 ‘불요불급’ ‘필수불가결’이란 표현으로 보수적인 투자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1월말 비동기식 IMT2000(WCDMA) 투자규모를 5200억원으로 밝힌 뒤 돌아온 것은 연일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던 주가뿐. 당초 1조원을 넘는 투자를 절반 이하로 줄인다고 해도 주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던 것이다.

 SK텔레콤이 추진중인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도 아직 올해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채 1차 위성구매 대금 결정시기를 자꾸만 늦추고 있다. 위성DMB 추진단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위성DMB 사업을 보고 뛰어든 장비·솔루션 벤처기업들이 요새 들어서는 죽을 맛이라고 호소하고 있다”면서 “본사의 투자방침이 보수적으로 바뀐 뒤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고백했다.

 마케팅 비용을 지난해 이하 수준으로 동결한 KTF도 투자 축소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예정된 2350억원의 3세대(G) 서비스 투자규모는 신규 WCDMA와 EVDO 부문을 합친 수준. 결국 WCDMA는 1350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LG텔레콤은 3G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아예 생각조차 못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LG텔레콤 관계자는 “2G 주파수도 남아도는 판인데 신규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최근 통신사업자들의 투자경색 분위기는 결국 시장포화와 과당경쟁, 이에 따른 이익감소를 보전하고 궁극적으로 주주중시와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취지다.

 이에 대해 LG투자증권 정승교 애널리스트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의 잣대로 현재의 통신시장에 접근해서는 안된다”면서 “전반적인 투자축소로 비춰지지만 실은 꼭 필요한 부분은 대부분 투자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통신사업자들이 온통 ‘주주’ 눈치보기에 급급한 채 앞으로 5년, 10년 후 먹거리를 찾는 데 지극히 소극적으로 돌변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SK텔레콤의 위성DMB 장비를 개발중인 모 벤처기업 대표는 “통신사업자들의 당초 계획만 믿고 따라온 우리로서는 당장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주주중시를 위한 투자축소는 이해하지만 신규 사업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은 IT산업 전체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