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화성으로 간 사나이

 지구를 지키지 못한 신하균과 단 한 번도 스크린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김희선이 만나 무슨 사랑을 할까. 다른 장르와 달리 멜로 영화에서는 여성이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는다. 화려한 외모를 강조하는 김희선에게는 최적의 장르인 셈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갈등이야말로 멜로 장르가 관객을 유혹하는 최대의 미끼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제공하고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멜로 영화는 사회의 질서가 사적인 담론을 통해 표현되기를 바라는 부르주아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공적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보다는 사적인 컨텍스트 안으로 담론을 축소하고 연인 혹은 가족 안에서 갈등을 생성시키려고 한다. 따라서 감정의 과잉은 이미 예고돼 있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매우 단순한 영화다. 한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스타일의 삼류 신파 멜로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다. 김정권 감독은 상이한 시간대를 살고 있는 남녀가 동시에 마주치는 사랑 이야기 ‘동감’류의 소품을 동어반복한다. 기획하고 각본을 쓴 장진 특유의 재기와 감각적 체취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등으로 대학로 연극 인맥을 충무로로 옮겨놓는 데 성공하면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지형도를 구축하고 있는 장진 사단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산골 마을에서 자란 두 남녀. 승재는 시골 우체부가 되고 소희는 도시로 진출해서 커리어 우먼이 된다. 정석대로 승재는 소희를 위해 지극정성을 다하지만 소희는 외국 유학 출신의 훤칠한 미남에게 마음을 빼앗겨 승재의 순수한 사랑을 거부한다. 그녀가 다시 승재에게 관심을 가질 때 이미 그들은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돼 있다.

 속지 말자. 알맹이는 없고 이야기의 본질은 수없이 반복된 낯익은 것이다. 순수를 가장한 현란한 수사학이며 동화같은 러브 스토리로 위장된 신파 멜로다. 뛰어난 것은 포장술이다.

 닭살 돋는 상투적 대사도 그렇지만 관객의 감정선보다 앞서가는 음악도 거슬린다. 위선적 내러티브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내면으로 동화되지 못하게 한다. 클로즈업은 관객들에게 발언하는 연출가의 무기 중 하나다. 의미없는 잦은 클로즈업샷은 연출의 기본기를 의심하게 만든다. 도시/시골의 상투적 크로스 커팅도 의미를 반감시킨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 조금 더 깊이있게 탐구돼야 했던 것은 물질적 이미지들이다. 제목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성의 상징은 너무나 단순하다. 이미지의 울림도 없고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죽음으로 대치될 수 있는 화성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불의 이미지를 극대화해야만 했다. 더구나 주인공들의 고향은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예정지역이다.

 영화의 오프닝신부터 물의 상상력은 무엇인가 큰 의미를 갖고 다가올 것만 같다. 그러나 그뿐이다. 물/불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사랑 이야기가 훨씬 멋지게 탐구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제작진들의 상상력은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어서 우리를 이미지의 깊은 울림으로 데려가지 못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삶의 진정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이야기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새로운 스타일이다. 현란한 제스처는 순간적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며 관객을 유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곧 그 바닥을 드러낸다. 나는 그런 화성에 가고 싶지 않다.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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