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불경기와 신세대 창업 부재로 노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에 최근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연합군’을 속속 결성하는가 하면 참신한 이미지로 사명을 바꾸고 있다.
이미 사오정(사십오세 정년)을 훨씬 넘긴 장비업계 사장들이지만 신세대들 못지 않은 적극성과 참신성으로 도도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뭉쳐야 산다=반도체업계 CEO들 대부분은 입지전적인 인물들이어서 독자성이 강하다. 그래서 협력의 문화가 부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컨소시엄 구성이나 동반 진출 등 전략적 제휴도 불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무대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국내 업체들이 ‘연대 시너지’를 바탕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유수업체와 본격적인 경쟁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장비업체 아토의 문상영 사장은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미국이나 일본업체에 밀린 것은 기술력의 열세를 떠나 제품 포토폴리오가 빈약했기 때문”이라며 “생산라인을 일괄 수주하면 향후 애프터서비스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트랙장비업체 실리콘테크(대표 우상엽)는 최근 1억3000만달러 규모의 중국 선양 반도체 공장 설립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이 사업을 국내 업체 9개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키로 했다.
나노산업기술연구조합 소속 20여개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최근 반도체 장비에 응용되는 ‘플라즈마 소스’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키로 한데 이어 해외 동반진출도 모색키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국내 40여개 중소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A네트’라는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중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수출하는 리퍼블리시 사업에 나섰다.
전략적 제휴를 통한 동반 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반도체 설비업체 성도이엔지(대표 서인수)와 반도체 장비업체 에스티아이(대표 노승민)는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 현지 공장을 공동 설립, 반도체 설비와 장비를 패키지로 공급키로 했으며 삼성전자 계열사인 한국디엔에스(대표 임종현)는 지난달 일본 장비업체 N사 등 2개 업체와 제휴를 맺고 해외 공동영업을 추진키로 했다.
성도이엔지 서인수 사장은 “이같은 움직임은 해외시장에서 우리 업체간 출혈경쟁을 미연에 차단한다는 측면에서도 고무적”이라며 “규모의 경쟁으로 한국의 브랜드 파워도 한껏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 세련되게, 더 참신하게’=장기 불황으로 경영난에 허덕여온 업체들은 아예 얼굴까지 바꾸며 ‘환골탈태’에 나서고 있다. 올들어 동양반도체장비와 유일반도체가 각각 ‘퓨렉스’와 ‘넥사이언’이라는 다소 생소한 사명으로 새로 태어났으며 지난해 메카텍스(현 솔트론), 한국도와(현 세크론), 코삼(현 라셈텍) 등도 세련된 이름으로 새단장했다.
실제 회사명을 바꾼 업체들은 이를 계기로 이미지 쇄신 작업에 나서거나 사업다각화를 적극 꾀하고 있다. 동양반도체장비와 유일반도체의 경우 아예 사명에서 ‘반도체’라는 단어를 빼고 이미지 쇄신에 나선 케이스다. 반도체 경기가 3년째 불황에 허덕이면서 ‘반도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21일부터 ‘넥사이언’이라는 이름으로 코스닥 거래를 시작한 옛 유일반도체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침체된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기기 부품사업과 반도체장비 세정사업 등에 새로 진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솔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메카텍스도 SI업체 닻컴씨오케이알과 합병, SI쪽으로 사업영역을 넓힌 것이 개명의 배경이 됐다.
또한 한국도와는 삼성전자 계열사로 완전 편입된 이후, 코삼은 대표이사가 교체된 것을 계기로 각각 상호를 바꾸고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진수 세크론 사장은 “사명을 바꾸는 것은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은 물론 회사 내부적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도 됐다”며 “사명이 바뀌면서 임직원들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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