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벤처가 다시 살아나려면

 이제는 벤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은 올해들어 매출다운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빌린 돈을 값아야 할 날짜가 코앞에 다가와 한숨만 짓는다. 국민의 정부가 벤처의 젖줄로 내놓은 각종 정책자금도 상환기일이 임박했으나 감당할 능력이 없다. 자본은 상당부분 잠식돼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새 정부는 어떤가. 얼마전 중소기업특별위원회는 대통령업무보고를 통해 ‘시장시스템 육성과 간접 지원’으로 함축되는 중소·벤처기업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정부의 쏟아붓기식 자금지원이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조성과 시장경쟁을 중시하겠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기간 강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방향만 나왔을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청와대나 관련부처에서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벤처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정책마련을 위해 벤처기업협회 등의 의견수렴을 한다거나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다음달초쯤 벤처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도다. 지난 정부의 벤처정책에 대한 성패를 정밀분석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을 촉진시키기 위해 비과세하는 방안을 재경부와 협의중이라고 한 발언은 현안에 대처하는 시스템적인 대안일 수 있다. M&A는 비단 벤처업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과 산업의 체질강화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지 않다. 사회적 인식 부재와 함께 과세문제, 주식매수청구권 등 M&A의 구조적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M&A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식맞교환에 대한 비과세의 경우 자금세탁·상속 등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어 금융당국이 난색을 보여왔다. 주식매수청구권도 주주의 기본 권리여서 제한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장원리를 해치지 않는 범주에서 우회적인 당근과 채찍이 요구된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비과세의 부작용 때문에 아예 비과세를 고려하지 않기보다는 악용소지를 억제할 수 있는 감시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M&A는 동업종간 M&A가 돼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동안 코스닥시장 우회등록이나 재테크용으로, 또는 M&A형식을 빌어 자금을 세탁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거의 대부분이 이업종간 M&A였다. 동업종간 M&A가 요구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 체질강화와 산업의 경쟁력 강화다. 한 업종의 연간 시장규모가 3000억원에 불과하고 300여개 기업이 난립하고 있는데 다른 업종에서 미래수익을 보고 뛰어든다면 M&A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한시적이지만 동업종간 M&A에 대해 다각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벤처기업 퇴출시스템도 강화돼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우후죽순으로 벤처기업을 탄생시킨 경우에는 특히 강력한 퇴출시스템을 요구받는다. 그것도 인위적인 퇴출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시장경쟁을 통해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합리적인 통로(퇴출시스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과거처럼 많은 창업벤처를 만들어내는 벤처양산 정책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이보다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은 벤처기업을 국제무대에 올려놓을 수 있는 구체적인 벤처육성책이 필요하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