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양성자가속기사업 정책 번복에 따른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사활을 걸고 불꽃 튀는 유치경쟁을 벌여온 대구·전북·전남·강원 등 4개 광역단체는 정부의 방침에 크게 반발하며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특히 각 지자체는 양성자가속기 설치와 핵폐기물처리시설 유치를 연계시키려는 정부방침이 굳어지는데 대해 ‘끼워팔기식 정책’이라며 지자체·의회· 경제계를 중심으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성자가속기사업 추진 경과=양성자가속기는 수소를 방전시켜 얻은 양성자를 빛의 속도(초당 30만㎞)로 가속하는 장치로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최첨단 설비다. 대형 국책프로젝트로 양성자가속기사업을 추진해 온 과학기술부는 지난달 초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할 지역을 선정하기 위해 유치기관을 공모했다. 여기에 대구·전북·전남 영광·강원 춘천·강원 철원 등 5개 지자체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과기부는 당초 이들 지자체이 계획서를 바탕으로 1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유치평가위 평가를 거쳐 이달말 최종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을 받아들이는 지역이 양성자가속기 사업을 유치할 수 있게 하자’는 산업자원부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연계는 특정지역에 유리=유치경쟁을 벌여온 각 지자체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해도 지역내 유치를 확신해온 대구시는 “정부의 핵폐기물시설 연계 방침은 사실상 대구를 배제하려는 의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시는 정부에 두 시설간 연계방침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동시에 관계자 긴급회의를 잇따라 열어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연계반대 서명운동, 대정부 건의서 전달에 나서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와 시의회도 최근 중앙부처에 전달할 건의서에서 “미래과학기술의 근간인 양성자가속기사업을 이와 무관한 핵폐기물시설과 연계해 민원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양성자가속기의 특성을 무시한 상식밖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전남 영광지역민들도 핵폐기물관리시설 연계 방침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핵폐기장 반대 영광범군민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에서 “영광군민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핵폐기장 사업이 여타의 사업과 연계·추진된다는 것은 핵폐기장 사업의 불합리성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 추방 서남해안 대책위도 성명을 내고 향후 국회와 민주당 전남도지부 사무실에서 항의 농성을 벌이기로 하는 등 집단 행동에 들어갈 방침이다. 전북도와 정읍시민들도 “이번 정부 방침은 핵폐기시설 유치를 꺼리는 주민정서를 양성자가속기 유치로 달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조차도 “양성자 가속기 유치지역 발표를 10여일 앞두고 갑자기 일정을 변경한 것은 정부의 공신력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강원도의회·춘천시의회·철원군의회도 최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방사성 폐기물과 가속기 설치를 연계하는 일방적인 정책방침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공동 대응키로 해 양성자가속기로 인한 파문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kr 광주=김한식기자 h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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