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저녁 7시 국회 앞 음식점에 들어오는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56)의 눈에 패기가 넘쳤다. 11년 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처음 등원할 때의 그 눈이다.
김 의원은 새로운 도전길에 올랐다. 당권이다. 그는 지난 11일 한나라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반응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10위권 밖에 있던 그의 홈페이지(http://www.kho.or.kr)에 갑자기 네티즌이 몰려들었다. 웹사이트 순위 분석 전문사이트인 랭키닷컴(http://www.rankey.com)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방문자가 4500명을 넘어 점유율 15% 안팎으로 1위에 올랐다. ‘한나라당의 디지털정치인 1호’라는 별칭이 허풍이 아님을 실감케 했다.
출사표를 던진 후 연속되는 모임으로 몸은 파김치가 됐어도 그의 눈길에 힘이 실리는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런데 이처럼 온라인의 뜨거운 반응이 정작 김 의원의 득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듯하다. 그가 당 개혁특위원장으로 내놓은 인터넷 투표(전체 투표 중 20%) 도입 방안이 결국 무산됐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양보를 다했더니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뼈만 남은 대어가 되더라”며 술잔에 입을 댔다.
한나라당에서는 사이버가 득표보다 감표 요인이다.
“우리 당의 보수층에서는 사이버를 별종으로 여깁니다. 거부감이 많아요. 보수층은 대선 실패 이후 변화를 외치는 등 반성의 빛도 있었으나 새 정권이 요즘 삐그덕거리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나 개인의 경선보다 당 이미지 제고에는 큰 효과가 있는 수단인데……”라며 인터넷 투표 무산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IT에 대한 김 의원의 남다른 관심은 초선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대선을 지켜보러 몇몇 의원과 미국을 방문했다. TV 광고 등 치열한 미디어 정치가 인상적이었지만 미국 정당의 유권자 데이터베이스(DB) 활용에 더욱 눈길이 갔다. 미국 정당은 엉성하다는 선입관이 송두리째 깨졌다.
개혁특위를 운영하면서 가장 관심을 둔 것도 바로 당원 DB였다.
“당시 미국사람들은 인터넷을 쇼라고 생각합디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사이버상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옮겨갑니다. 지난해 월드컵과 촛불시위, 대선을 보세요. 세계적으로도 드믄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혁명적 변화를 우리 당과 지지자들만 모르고 있으나 답답합니다.”
김 의원에게 인터넷은 뭘까.
“대학교 3학년인 막내딸과 자주 온라인으로 대화합니다. 오프라인에서는쑥스러운 얘기도 할 수 있어요. 온라인에서 더 ‘필(feel)’이 통할 수 있더라고요.”
그의 지역구는 부산 영도구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지역구 관리가 더욱 힘들어지지 않겠느냐 했더니 그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지역구 관리가 어려워지는 것은 되레 좋은 현상입니다. 정책 선거가 된다는 얘기 아닙니까. 3김시대를 끝낸 노 대통령이 이를 통해 또 한번 역사적 사건을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노 대통령이 과거 3김의 구태를 재현해 부산에서 지지를 확보한다면 정치는 또다시 후퇴할 것입니다.”
김 의원은 이번에 경선에 출마하면서 상임위원장(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직을 내놨다. 감회가 궁금했다.
그는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 손을 놓으려니 애석하다”며 “경선에 출마하면 위원장직을 사임해야 한다는 규정이나 관례도 없지만 정치 수준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과기정위 활동 덕분에 시대를 앞선 정치인·사이버정치인·디지털정치인으로 불리지만 과분하다”면서도 “그래도 두 가지는 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도감청문제 해결과 퀄컴으로부터 로열티를 받아낸 것이다. 김 의원은 3년 동안 도감청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이젠 더이상 이슈가 안될 정도로 만들었다. 도감청문제 제기를 정치 공세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김 의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통신이 불안하면 전자상거래도 안되고 정보사회도 구현되지 않는다. 정보사회 향유를 위해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위원장으로서의 자랑거리는 질의와 답변을 하는 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김 의원은 “과기정위는 여야도 없고, 정쟁도 없고, 미래만 있는 위원회란 얘기도 듣는다”며 “너무 수준이 높아 언론이 관심도 없다”고 농담을 건넸다.
김 의원은 이 정도만 꼽았지만 ‘종이없는 국감’을 만든 것이나 상임위 활동 인터넷 생중계, 과학기술공제법 등도 그의 이름을 높여놨다.
국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조직, 계보다. 그런데 김 의원은 이 세 가지를 안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럴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해서는 정치 발전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능하면 지구당 순회도 자제하려 한다.
그는 “당원과 국민이 모두 변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모든 의원이 변해야 한다. 변화의 주체인데도 객체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화는 지난 15일 정통부 업무보고 때 그가 한 쓴소리로 이어졌다.
“위원장을 그만 둘 거라는 얘기를 안하려 했는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업 육성도 좋지만 우리 정보사회를 책임진 정통부는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어요. 인프라를 그렇게 깔아서 뭘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경선에 출마했으나 그의 동선에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아침 7시 반에 여의도 광장아파트를 나와 직접 차를 몰고 스포츠센터에 가 운동을 하고 정시에 등원한다. 저녁에 모임이 잦아진 것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희망은 있습니다. 모두 변화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어야 합니다. 그 수단을 알고 있고 경험도 있는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9시 무렵 김 의원은 이렇게 다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나라당(영도구)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3선(14, 15, 16) △경남고, 서울대 졸업 △정치학 박사(전자민주주의 국내 1호) △미국 후버연구소 객원교수 △동아일보사 기자 △국무총리·대통령 정무비서관, (사)정보생활 이사장, 문협 회원, 당기조위원장·부총재, 부산시 지부장 △과기정위원장 △한나라당 개혁특위 제2분과 위원장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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