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집 대신증권 부사장 hjmoon@daishin.co.kr
70년대 말 대학원 재학중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로부터 졸업논문에 필요한 프로그램 개발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선배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해 원하는 주파수를 쉽게 찾을 수 있는 TV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에는 흑백TV가 대중적이었는데 기계식인 로터리 스위치를 돌려서 TV 채널을 맞추다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필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전자공학에도 관심이 많아 참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논문이 모양을 갖출 무렵 문제가 생겼다. 당시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한 교수 한분이 경제성을 문제로 이 주제는 졸업논문으로 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10만원 하는 TV에 몇십만원이나 하는 컴퓨터를 붙이면 팔리겠냐는 것이었다. 결국 선배는 다른 주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교수님의 충고는 연구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는 습관을 갖도록 했다.
다국적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는 기업인수합병(M&A)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경쟁력 없는 사업부분은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사업부분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80년대 중반 GE와 규모가 비슷한 RCA를 거액을 주고 산 후 가전부분을 프랑스 톰슨의 의료장비사업부문과 맞바꿔 기존에 있던 의료장비사업부문과 합해 경쟁력을 키운 적이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1∼2위를 할 수 없는 사업부문은 모두 M&A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좋은 회사를 잘못 판 적도 있었지만 GE내 각 회사들이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M&A를 활용한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들어간 흑백TV가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런 물건을 만들 회사도 없겠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채 다른 사업분야로 진출해 경쟁력 10위 안의 제품만 만드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서 현재 1∼2위 회사들도 몇십년이 지나면 M&A가 될지도 모르는 법이다. 생존과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시장변화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경쟁자를 제치고 계속해서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흑백TV와 마이크로 프로세서처럼 너무 앞서 가는 것도 문제지만 창조적 파괴 없이는 존재도 없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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