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덕 국제변호사, 정보통신지적재산협회장 sdjang@itipa.org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부패방지와 관련, “공정한 절차를 파괴하는 모든 행위를 부정부패로 규정해야 하며 부정부패 고발을 장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율사 출신의 대통령다운 착안이라고 본다. 다만 이것이 요즘 많이 행해지고 있는 토론행정과 인터넷 참정과정과 관련해 생각할 때 취지와 달리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노파심에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공정성은 행위 자체의 공정성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절차상의 공정성도 문제가 된다. 공정을 기하는 절차란 인권이나 재산권 등에 대한 제한을 가하기 전에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사실관계와 법률관계를 충분히 심리하고 권리의 제한을 받을 사람에게 변호하거나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이 공정한 절차의 보장이 매우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 편견과 속단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예를 흔히 본다. 특히 정보가 인터넷을 통하여 초고속으로 유통되는 오늘에 와서는 좋은 여론의 확산뿐만 아니라 나쁜 여론의 증폭 또한 용이해졌다.
공정한 사법심사를 거치기 전에 검찰수사 단계에서부터 사회 여론화되어 사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는 기업이나 개인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불공정한 행위 또는 부정부패를 행한 기업이나 개인을 벌하는 것이야 당연히 옳은 일이지만 만일 무고한 자를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거치기 이전에 벌한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것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위 대중민주주의의 폐단은 바로 다수의 횡포에 있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존중하는 데 있다.
인터넷에 소리 높이 떠오르는 것만 여론으로 보고 침묵하는 나머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위험한 간과라 하겠다. 눈에 띄는 부정부패는 찾기도 척결하기도 쉽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잠재하는 비리는 알 껍질 속에서 알이 안 보이듯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공정한 절차를 파괴하는 행위는 방지되어야 하지만 그 방지의 과정에 있어서도 공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이 무엇이 합리적이며 어떤 것이 진실로 공정한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의 여건을 마련하고 속단과 편견으로 치닫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하나의 선을 위해 또 하나의 선을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발정신도 성숙된 시민의 표징이지만 “감히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자 누구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시민의식도 동시에 갖췄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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