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이라크전쟁의 결과는 부시행정부의 이른바 불량국가 대응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 연결돼 있으며 북한 핵문제 해결전망과 관련돼 있다. 전쟁의 초기단계에서 전쟁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 상황에서 미영 연합군의 작전은 빗나가고 있다.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전이다. 미국은 국제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으며 이라크 인민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전 여론은 실시간으로 세계인들 마음의 네트워크를 움직이고 있다. 아랍권과 유럽, 남미와 동남아를 휩쓸고 있는 평화의 축이 전쟁의 축을 위축시키고 있다.
이라크는 어떤가. 전쟁이 시작되면 내부적으로 반후세인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그야말로 미국의 일방적인 기대였다. 인접국가에 설치한 난민 캠프는 비어 있고 오히려 이라크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후방 곳곳의 이른바 ‘해방지역’에서 게릴라 전쟁은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 사람들은 현재의 피폐한 현실의 원인을 후세인의 독재에서 찾기보다는 미국의 매우 오래된 봉쇄정책으로 돌리고 있다. 남부의 시아파도, 북부의 쿠루드족도 미영 연합군의 내부 협력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시간개념이 달라졌다. 전투장면이 생중계되고 다양한 시각과 현지의 목소리들이 소통되는 현재 디지털시대의 하루는 과거 베트남 전쟁의 1년과 맞먹을 정도다. 부시행정부가 막강한 군사무기를 앞세운 전투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미국 국민의 마음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든 혹은 그 과정에서 전쟁이 중단되든 이라크전쟁 이후의 국제질서는 격렬한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협력외교는 당분간 정상화되기 어렵다. 냉전 이후 유일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불량국가의 정권 교체를 추구했던 미국과 영국은 그들 스스로가 정권교체를 당할 수도 있다. 그것은 탈 포용정책의 실패며 군사적 패권주의의 패배를 의미한다.
한반도 역시 이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물론 부시 행정부가 중동과 같이 일방적으로 군사적 선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있는 일본 역시 군사적 공격을 반대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현재 이라크 전쟁에 전념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에 대해 이른바 다자간 접근을 말하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다자간 접근은 북한에 대해 외교적 협력을 통해 압박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분열과 한반도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현실 가능성이 낮은 계획이다.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조속히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부시 독트린을 감안한다면 한미 공조는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 세계 질서의 격변을 주의깊게 주시하면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자외교를 생각해볼 때다. 우선적으로 한일 양국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명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동북아 외교도 중요하다. 미국이 말하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다자간 접근이 아니라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다자간 협력외교를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남북관계의 신뢰수준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모든 외교적 능력은 남북관계 수준에 달려 있다. 북한이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남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한의 외교적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북 대화가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대화는 북한의 입장에서 세계로 열린 유일한 창문이며 남한의 입장에서 위기를 관리하는 안전판이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은 과거의 낡은 구도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보다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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