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후 정부·공기업·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IC카드 프로젝트가 추진과정에서 투명성·효율성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식입찰을 거쳐 선정한 사업자를 주관기관이 뒤집어 법적소송에 휘말리는가 하면, 이미 민간업계가 상용화한 IC카드 솔루션 개발에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는 등 불필요한 예산낭비 사례도 등장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공공기관들이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1원 낙찰’ 사례를 양산해 최저가 입찰제의 고질적인 병폐가 불거지고 있고, 금융권에서는 마그네틱카드를 IC카드로 전환하는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특정 기술과 사업자 진영을 편들어 시장 곡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지금이 범사회적으로 IC카드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발점인만큼 정부 감사기관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이같은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투명성=광주버스조합은 지난해 7월 지역 교통카드 및 전자화폐 사업자로 비자캐시코리아를 선정했으나 올 초 광주시의 개입으로 경쟁사인 마이비로 사업권이 뒤집혔다. 이에 따라 비자캐시는 시와 버스조합을 상대로 사업자 선정계약 무효 가처분 소송 및 5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 당시 물의를 빚었던 전자화폐 사업자 번복건은 신정부 출범 후 현재 지역 사정기관의 주요 조사대상으로 알려질 정도로 심각한 현안이다.
◇정부예산 낭비=산업자원부는 이미 지역 교통카드로 보급중인 콤비카드 개발에 지난해 말 7억여원의 개발자금을 투입키로 했다. 주관기관인 한국IC카드연구조합을 비롯, 총 10개 업체가 참여하는 이번 사업은 지난해 말 산업기술평가원의 타당성 심사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됐다. 원천기술 개발이 목적인 중기거점과제 대상이기엔 사실상 무리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산자부가 해당 예산을 집행키로 함으로써 결국 참여 업체들끼리 개발자금을 서로 나눠먹는 꼴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저가 입찰제의 폐해=지난해 말 이후 KT·도로공사·금융결제원 등에서 추진했던 IC카드 관련 시스템 구축사업은 최대 15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1원으로 사업자가 갈렸다. 유독 최근 들어 1원 낙찰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이들 주요 공기업·공공기관이 최저가입찰제의 폐해를 악용하고 있는 데다, 향후 본사업의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워 참여사업자를 출혈경쟁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저급 개발에 따른 사업 전체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시장공정경쟁 침해=현금카드 위변조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행과 금결원이 주도하고 있는 ‘K캐시 기반의 금융 IC카드(현금)’ 사업은 당초 논의의 출발부터 현재 민간 IC카드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걱정을 불러왔다. 마그네틱 금융카드를 IC카드로 전환한다는 근본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K캐시라는 특정 기술규격과 전자화폐를 기본사양으로 채택하는 다소 불순한 의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간 사업자들의 반발과 차세대 스마트카드기반 금융서비스 국제표준인 ‘EMV’ 등과의 호환 등을 우려한 한국은행은 당초 올 하반기 은행권 공동의 정보화 사업으로 추진하려던 입장에서 시중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발 물러났다. 일부 시중은행과 한은·금결원이 내세우는 ‘K캐시는 금융권 표준 IC카드’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간 시장에서는 ‘선언적’인 표준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IC카드 사업들이 파행을 거듭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감사원 등 사정기관도 감사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전체 공공 IC카드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포괄적인 감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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