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는 있다"

◆디지털경제부·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벤처는 없다.’

 최근 들어 기업·정부 누구도 벤처라는 단어를 붙이려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벤처라는 수식어를 단 기사가 나오면 노골적으로 항의해 기자조차 벤처라는 단어를 쓰기에 머뭇거려진다.

 “왜 자꾸만 벤처를 언급합니까. 우리는 벤처가 아니라 신성장산업을 지원한다니까요. 앞으로는 벤처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벤처정책의 핵심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중기청 모 과장이 기자와의 최근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래서 요즘 벤처는 있어도 없다. 아직 8000여개의 벤처인증기업이 남아있고 한시법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2007년까지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중기청 모 과장의 말처럼 요즘은 온통 기술혁신·신성장·하이테크·신기술 등이 벤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더이상 ‘벤처’는 없고 ‘신성장산업’만 존재하는 것이다.

 벤처라는 단어에 대한 홀대는 정보통신부가 IT벤처팀을 산업기술과로 흡수하는 등 이미 지난해 말부터 광범위하게 진행돼왔다. 벤처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안 좋다 보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벤처를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바꾼다고 해서 정말 벤처가 없는 것일까. 단연코 아니다. 그건 말장난이다. 벤처가 신성장산업으로 불리든, 기술혁신기업으로 불리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도전의식·모험심 등 밝은 면도, 한탕주의를 동반한 각종 비리 등 어두운 면도 우리가 만들어온 벤처의 모습이다.

 때문에 우리는 벤처라는 말을 쓰기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점이 더 많이 부각되더라도 그것 또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과제다.

 길가의 이정표만 바꾼다고 목적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본질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신성장을 비롯한 각종 단어의 조합들 또한 5년, 10년 후 현재의 벤처와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벤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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