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25일 오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지프 리버먼, 프레드 톰슨, 엘런 트러처 등 수명의 상·하원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펜을 내려놓았다. 미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고, 권한이 막대한 부처인 국토안보부의 설립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국토안보부는 산하에 비밀검찰부를 비롯해 해안경비대·국경수비대·이민귀화국(INS)·세관·연방비상관리국(FEMA)·교통안전국(TSA) 등 22개 연방정부기관과 17만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초거대 부처로 그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설립과정에서 반대도 적지 않았다.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고 개인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여지가 넓어진다는 의견이 나왔고 부처의 신설보다는 지금의 부처간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들은 테러방지라는 21세기 ‘지극히 미국적인 대의’에 묻혀버렸다. 부시 대통령은 “21세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테러위협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톰 리지 백악관 국토안보국장이 초대 장관, 고든 잉글랜드 해군장관이 부장관으로 각각 임명됐다. 후속 인사도 뒤따랐다. 그리고 3월, 마침내 공식 출범을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연간 360억달러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될 국토안보부의 1차 임무는 미국을 겨냥한 테러공격을 예방하고 미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를 위해 △정보분석과 인프라 보호 △화학·생물·방사능·핵 등에 대한 대응조치 △국경 및 수송부문 보안 △비상시 대처 및 대응조치 △연방·주·지방 정부 부서 및 민간부문과 공조 등 5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부처 설립과 이라크 전쟁 준비과정을 바라보면서 당초 7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미국민들의 국토안보부에 거는 기대는 상당히 줄어든 게 사실이다. 반면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들의 기대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예상과 달리 경기회복 시점이 계속 뒤로 밀리면서 “수요 진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고 특히 민간수요 위축 등으로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는 IT시장에 국토안보부가 단비를 내려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대테러 대응사이트를 개설, 국토안보부에 운용을 맡기면서 홍보에만 1억달러를 투입한 사실은 앞으로 국토안보부가 얼마나 돈을 풍족하게 쓸 부처인지를 단적으로 입증했다. 인프라 보호에 필수적인 IT분야에 앞으로 적잖은 투자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IT업계에서는 국토안보부로 말미암아 21억달러의 신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생체인식 등 보안과 데이터마이닝, 지리공간 정보시스템 등의 분야는 ‘특수’까지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역 업계에서는 모든 수입품 통관을 책임지고 있는 관세청이 국토안보부로 이관됨으로써 수입품 통관이 예전보다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경제 외적인 내용이지만 국토안보부에 거는 부시 대통령의 기대가 거의 ‘편집증’ 수준을 보이고 있는 점도 세계 IT 종사자들의 바람에 역행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토안보부는 테러리즘과 싸우는 미국 정부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음모를 꾀하는 무자비한 살인자들에 대해 우리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법안서명식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이 선택한 단어들은 부정론 조성에 힘을 더하고 있다.
리지 장관이 “우리는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준비할 수는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내에서조차 “국토안보부는 국민을 감시하고자 하는 목적 아닌가”하는 의구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에다 이라크에 대한 미 정부의 대응이 예상도 준비도 아닌 힘에 근거한 ‘철부지적 폭력’ 양상을 띠고 있어 세계 IT종사자들의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출범을 앞둔 국토안보부가 세계 경제회복보다는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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