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수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bongspark@kibo.co.kr
청년실업이 전체 실업률의 2배가 넘는 8%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선행지표 역할을 하고 있는 소비자 실사지수와 기업 실사지수가 최근 들어 100 이하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라크전쟁, 북핵문제는 내수위축과 함께 투자부진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실질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데도 주가하락과 투자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우리 경제는 선진 디플레이션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 40년간 사회발전 과정에서 역동과 활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산업구조 고도화, 수출 지향, 선성장·후분배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정부가 앞장서고, 민간이 뒤따라가는 후진국형 성장모델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그러나 세계화·디지털화·다원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미래 경제의 대안으로 내놓은 ‘벤처’는 어떤 모습인가.
세계적으로 벤처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벤처는 침체를 거듭하며 긴 빙하기에 들어선 느낌이다.
2000년 3월 최고 787포인트까지 오른 코스닥 지수가 최근에는 50포인트 아래로 주저앉았다. 벤처인증 기업이 2001년 말 1만1392개에서 지난해 매월 200개 이상 줄어들더니 올초에는 9000개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투자여력을 잃은 벤처캐피털들도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무슨 무슨 게이트’다 해서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수많은 성장형 기업들이 수익모델 창출에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이상 벤처를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 그동안 벤처도 많은 자구노력을 해왔다. 구조조정과 사업전환, 특화기술 승부, 해외시장 활로 모색 등이 바로 그것이다. 벤처 커뮤니티 형성, 대기업과의 파트너십 구축 등 공존을 위한 노력도 해봤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변화된 환경에 걸맞은 벤처정책이 있어야 할 차례다. 새 정부 출범은 벤처정책을 변화에 맞게 새로 정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그간의 정책은 불모지대나 다름없던 우리 사회에 벤처의 씨앗을 심었다는 면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책은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추진돼야 한다. 새 정책은 봄에 새 싹을 키우는 햇볕이 돼야 할 것이다. 땅을 갈아주고, 물과 비료를 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벤처’라는 나무가 스스로 대지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토양만 제 모습을 갖춘다면 그만일 것이다.
벤처는 위험부담이 크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이익이 기대되는 사업모델을 성취욕이 강한 창업인이 주도하는 기업 형태다. 또한 현대적 의미의 벤처는 독립된 개체라기보다 교육연구기관·기업·정부·지역 경제단체·금융기관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사회적 네트워크에 종속돼 있다. 따라서 향후 벤처정책은 이런 개방형 생태계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를 지향하고, 기술로 승부할 수 있도록 유도해줘야 한다.
기술신용보증기금도 벤처에 대한 지원을 벤처생태계 내 상호작용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다. 벤처기업은 살아 있는 기업이다. 기업마다 나름대로 라이프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성장단계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창업이전·창업·성장·성숙단계에 구조조정을 포함하는 ‘맞춤식 종합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기존 기업의 보유 기술·인력·경영노하우·국내외 영업망 등 무형자산의 유용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창업 못지않게 중요하다. 부실징후기업을 M&A 등을 통해 정상기업으로 살려내 경제행위를 지속시키는 것이야말로 구조조정의 참뜻이며, 결과적으로 글로벌 디지털 방식에 부합하는 기업정책이다.
미래는 벤처의 세계다. 벤처를 모르고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말할 수 없다. 많은 나라가 벤처를 육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로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작으면서도 강한 벤처들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헝그리 정신을 지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벤처인들이 90년대 초심으로 돌아가 기술과 경쟁력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하지 않을까.
‘벤처의 봄’을 앞당길 새 정부의 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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