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20일 오후 서울 마포의 삼겹살집. 양복입은 넥타이부대 20여명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주거니 받거니 흥이 돋는다. 왁자지껄 소리내어 웃다가 어느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누군가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노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옆자리의 일행도 눈시울이 불거졌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 발표회를 치른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 냉장고 상품기획 직원들의 회식 자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지난 99년 워크아웃기업으로 지정된 후 험난한 길을 걸어온 업체다. 과거 ‘탱크주의’로 승승장구하던 대우전자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소비자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져가던 시점에 대우일렉트로닉스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1월 다시 태어났다. 그 첫 ‘작품’으로 내놓은 신제품이니 직원들이 느끼는 감회가 얼마나 남달랐을까.
대우의 양문형 냉장고는 타업체에 비해 늦긴 했지만 IMF 직후인 98년부터 선행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빠듯한 개발비와 워크아웃기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힘든 세월을 보냈다. 기술을 개발하면서도 과연 이 제품이 상품화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혹시 ‘대우 냉장고`’를 잊지나 않았을까 하고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냉장고 상품기획을 맡고 있는 한 직원은 “사실 유혹도, 고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내놓고 보니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남아 있던 내 선택이 옳았다고 느껴집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모처럼 대우 직원에게서 쓴웃음 아닌 밝은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대우 직원들에게서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분히 침체돼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위축돼 보였다. 직원 스스로도 의기소침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각오도 대단하다.
이제 남은 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내놓는 것, 더 나아가 세계시장에서 다시 한번 옛날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땀과 노력이 있어야만 이뤄진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이 세상에 온전히 서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이날 대우 직원들의 소주잔에는 그들이 감내해온 역경의 눈물이 담겨 있었다. 이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제는 대우전자가 아닌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몫이 된 것 같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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