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이요. 그런거 없습니다.”
대중국 수출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성기 사장(40)은 손사래부터 친다. 이 사장은 10여년 전 단신으로 중국 상하이에 들어와 현재는 연간 300만달러 이상의 한국산 반도체 생산장비를 중국에 들여오고 있는 KST사(http://www.kstcom.com)의 대표다. “한국 기업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시장은 무주공산이 아닙니다. 이제 단순 수출방식으로는 중국에 내다팔 물건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 사장의 말은 계속된다. “중국시장은 크게 품질이 우수한 다국적 선진기업 제품과 값이 싼 현지업체 제품으로 양분돼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한국산은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국시장을 정확히 읽어라=이송 KOTRA 대만 무역관장은 “‘중국은 이렇다. 따라서 이런 식의 거래가 첩경이다’라는 투의 획일적 권고는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한다. 중국인들조차 ‘다춰터춰(大錯特錯)’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다양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가 책정 방식만해도 연안 도시는 소득 수준이 높아 판매가를 비싸게 책정해도 무방하나, 절대 빈곤지역이 잔존해 있는 서부 내륙지역에서는 이같은 고가 전략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기존 거래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상관습에 대한 이해는 처음 중국 기업과 거래를 틀 때 가장 유의해야할 사항중 하나다. 별다른 현지 정보가 없던 중국과의 교역 초기시절, 한국 기업들 사이에 만연돼 있던 ‘꽌시(關係·비공식적 친분) 제일주의’는 지금까지도 우리 업체의 중국시장 진입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후난성에 위치한 프렌드쉽&아폴로 백화점의 추이샹동 부총재는 “납품업체 선정시 기존 거래관계의 유무나 업계 평판 등을 종합 고려한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원이기도 한 추이 부총재는 “꽌시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며 꽌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국업체의 접근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쩌우 고과통신기술설비유한공사의 진옌원 총경리(사장급)는 “중국 IT기업은 타업종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라며 “따라서 의사결정 구조 역시 총경리급은 물론 실무 책임자, 기술 담당자 등으로 복잡하게 편제돼 있어 한 두개의 어설픈 꽌시로는 초기 접근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곧 기회다=이성기 사장은 현재 한국산 설비기기를 들여다 중국에 팔고는 있지만 ‘한국 제품이 좋으니 사라’는 것보다는 ‘우리 친구 사이니 좀 팔아달라’는 식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중국에 내다 팔만한 마땅한 한국산 설비가 많지않다는 얘기다.
“첨단 기기라고 하는 휴대폰도 현재 자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30%에 달할 정도로 중국의 기술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합니다. 잡제품으로는 이제 중국서 장사할 생각은 버리는게 좋습니다.” 20일 KOTRA 주관으로 열리는 ‘중국진출 전략설명회’ 참석차 더나인닷컴, 다헝IT그룹 등 주요 중국 IT기업들을 대동하고 서울에 온 KOTRA의 이효수 중국지역본부장의 말이다.
실제로 공급과잉으로 출혈경쟁이 심한 컬러TV와는 달리 플라즈마TV의 경우 중국에서는 예약금을 주고도 못사는 인기 상품이다. 중국의 양대 전자양판점중 하나인 궈메이(國美)의 한 관계자는 “LG전자의 제품의 경우 예약물량이 60대 이상 밀려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경쟁관계에 있는 또다른 전자양판점인 따중(大衆)에도 LG 플라즈마TV의 예약대수가 100대를 넘는 것으로 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지난해 중국 IT산업의 성장률은 11%. 이는 IT산업의 성장률이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핸드폰 등의 품목은 여전히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올해는 또 어떤 품목이 중국대륙을 뜨겁게 달구게 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장은 변하고 중국은 넓다.
◇이유있는 성공=중국 강소성에서 전기기계를 생산중인 K사장은 97년 중국정부의 투자승인을 받은 직후 수년간 시장조사만 해오다 지난 2001년에야 1000만달러를 투자해 6개 기종의 전기기계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4년여 동안의 시장조사를 통해 K사장은 중국인들이 품질 평가기준에 관한 세부내역을 알았고, 경쟁사들의 판매마진도 파악하게 돼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K사장은 설립 첫해 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인 중국시장 안착을 이뤄냈다.
지난 97년 60만달러를 투자해 세탁기, 냉장고, 전자렌지, 에어콘 등 4대 가전제품용 전자부품 공장을 중국에 설립한 A사. 기능이 떨어져도 값이 싼 중국제품에 밀려 이렇다할 매출을 못올리던 A사는 최근 과감한 아이템 전환을 통해 중국에 진출한지 5년여만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급변하는 중국시장도 흐름을 가지고 있다. 시장을 읽으려는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아이템개발과 연구개발에 전념했던 기업들에게성 성공의 길이 열렸다. 질러갈수 있는 비법이나 요령은 없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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