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통일IT강국` 전제조건

◆최기호 상명대사범대 학장·한국어정보학회장 chkh@sangmyung.ac.kr

 

 인류 역사가 오늘날처럼 급변한 적이 없었다. 현대의 5년은 조선시대 500년의 변화보다 더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지식기반 정보사회는 결국 ‘IT빠르기의 경쟁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근대산업사회에서는 늦게 출발해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수모를 당했지만 다행히 현대에서는 짧은 기간에 정보기술을 발달시켜 IT강국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뛰어난 한글이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문자며, 컴퓨터에 딱 들어맞는 음소문자다. 이 한글은 컴퓨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처럼 매우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미국의 과학자 제어드 다이아몬드는 권위있는 잡지 ‘디스커버’의 기고문에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이라고 극찬했다. 사실 한글은 일음일자(一音一字), 일자일음( 一字一音) 원칙이 있는 글자로 음성인식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다.

 우리가 IT강국이 된 것도 한글이 우수한 문자라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가령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뉴미디어 정보기술을 개발했지만 문자가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나 IT는 우리에 뒤져 있다. 이것은 가타카나와 2000여자의 한자를 꼭 써야 하는 복잡한 문자 구조로 말미암아 컴퓨터 처리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컴퓨터 자판에서 한글 자음은 자판 왼쪽에 배치하고 모음은 오른쪽에 배치해(좌자우모) 손쉽게 자모를 조합할 수 있다.

 손전화(휴대폰)의 한손 자판에서도 한글은 모음을 ‘천(ㆍ)’ ‘지 (ㅡ)’ ‘인(ㅣ)’ 세 글자로 처리하고 나머지 글자를 배치해 좁은 공간에서도 문자메시지 같은 IT를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앞서가면서도 문자가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부문에는 뒤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IT강국으로 도약했지만 불행하게도 북쪽은 IT 분야에서 열악한 상태다. 우리 민족이 통일될 때에 대비해 북한도 IT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본 IT설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의욕적으로 한국과 한반도를 동북아시아의 IT중심국으로 구상해 야심찬 도약을 꿈꾸고 있다.

 북한에 IT기반 설비를 해주고, 좋은 컴퓨터를 보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적자원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기반 사회의 기본 요체는 결국 사람이다. 남북한의 인적자원 교류가 북한을 정보기술화하는 기본인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듯 인적자원의 교류를 통해 컴퓨터가 무엇이고, 컴퓨터를 어떻게 만들며, 이런 것들을 통해 IT를 어떻게 확대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어정보학회에서는 지난 94년 남북한 학자 공동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중국 옌볜·베이징·선양·단둥 등지에서 IT학술 교류를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리고 남북한 공용전자용어사전을 공동편찬·발간했으며 자판 통일이나 ISO 국제표준 제정, 말뭉치, 음성인식, 한손 자판, 자국어로 홈페이지 찾기, 글꼴 문제, 기계번역 등에 대해 폭넓게 교류하고 연구했다.

 이제는 서울과 평양에서 학자들이 깊이있는 학술대회를 비롯해 공동연구를 할 수 있도록 인적교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조국 통일의 기반을 위한 국어 통일을 비롯해 남북 언어의 동질성 회복, 통일맞춤법, 통일국어사전 등의 언어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을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도록 남북한 정보망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에서는 인적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후원하는 것이 이산가족의 만남에 못지않은 중요한 과제임을 알아야 한다. 인터넷으로 가장 멀리 있는 평양 학생과 서울 학생이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때가 하루 속히 오기를 참여정부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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