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아이엠넷피아 사장 parkjh@imnetpia.com
사회의 모든 현상에는 유행이란 것이 있다. IPv6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IPv6 분야에서 가장 논쟁도 많이 되고 관련 사람들의 고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IPv6 킬러 애플리케이션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사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기존의 기술에 비해서 뭐가 좋은지, 특히 그것이 이용하는 사용자 측면에서는 어떻게 별다르게 느껴지는지 하는 것이 모두의 관심사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에 IPv6 관련 전문가나 전문기업들에서는 더이상 IPv6 킬러애플리케이션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논의하는 것이 유행이 지난, 조금은 식상한 주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뭘까? 많은 논의끝에 킬러애플리케이션을 충분히 찾았기 때문일까 ? 아니다. 킬러애플리케이션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킬러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IPv6란 기술(또는 서비스)은 기술적으로나 서비스적으로 의미가 없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는 뜻일까? 그것은 아니다. IPv6가 가지는 여러가지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것을 사용자에게 금방 느끼게 할 만한 응용을 만드는 데 IPv6 기술이 곤란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IPv6 기술은 이미 알려졌듯이, 많은 주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많은 주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정의 모든 가전기기에 모두 주소를 할당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필요하다면 개개인마다 2억개 이상의 주소를 할당할 정도로 많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듣기에 좋은 특성을 가지는 IPv6란 기술을 사람들이 금방 느끼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약간의 시범망이나 시범서비스에서 필요로하는 주소의 수는 많아야 수천개 이하다. 그 정도 주소는 기존의 IPv4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늘 받게 되는 질문인 “이 서비스가 IPv4에서는 되지 않나요?”하는 질문에 대한 답도 자연히 길어지게 된다.
“지금 규모에서는 IPv4도 되지만, 나중에 사용자가 많아지면 어려워집니다” 등과 같이 미래의 상황을 가정해야만 설득할 수 있게 되므로, 그 미래의 상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이상 IPv6가 매력적일 수 없는 것이다.
IPv6는 일종의 고속도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고속도로가 편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1㎞ 정도만 건설하고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느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 고속도로를 억지로 타는 것이 더 불편할 것이다. 차라리, 옆에 있는 국도를 타고 가는 것이 휠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수백㎞ 이상 건설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IPv6도 이러한 인프라사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조금씩 건설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만 비로소 그 편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IPv6 킬러애플리케이션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킬러애플리케이션은 조금씩 건설하면서(관련 기술도 개발하고 시범망 서비스도 하면서) 기다리면 자연히 오게 되는 하나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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