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IT 과제](17)통신사업자 투자 유도정책 세우라

 우리 IT산업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활발한 통신투자 덕분이다. ADSL과 CDMA에 대한 활발한 설비투자는 우리나라를 단숨에 초고속인터넷과 통신강국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최근 통신투자에 제동이 걸렸다. 망투자가 포화에 이른 데다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통신사업자들의 설비투자가 주춤했다. 통신장비 등 후방산업은 물론 IT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막대한 이익을 내고도 왜 투자하지 않느냐”는 원성도 나왔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은 별다른 투자처가 없다며 투자확대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IT산업의 엔진인 통신투자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이냐가 새 정부 IT산업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달라진 환경=지금까지 통신사업자들의 투자는 사실상 정부가 주도해왔다. ADSL 투자만 해도 통신사업자가 자발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 정책에 끌려갔다. CDMA 역시 마찬가지다. 어쨌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KT의 민영화로 우리 통신사업자들은 완전 민간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거대 통신기업을 품에서 떠나보낸 정부로선 예전처럼 손쉽게 투자를 강요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정부는 요금, 접속료 등 통신사업자를 옭아맬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주주의 경영감시가 날로 날카로워져 정부의 규제를 통한 투자유도 정책도 힘을 잃고 있다. 또 요금 등을 투자와 연계시킨 정책도 정책의 왜곡현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이 축소된 상황에서 사업자에게 무리한 투자를 종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투자확대의 당위성은 여전=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는 게 IT산업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통신은 우리 IT산업계를 이끄는 엔진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통신시장의 경기에 따라 전체 IT시장 경기도 춤을 춘다. 무엇보다 차세대 IT의 확보는 통신사업자의 역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신사업자가 투자를 멈춘다면 우리 IT산업의 엔진도 식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중국에 바짝 쫓기는 상황이다.

 통신사업자들도 이러한 인식 자체엔 공감한다.그래서 이동통신3사와 KT는 주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3000억원 규모의 ‘코리아IT펀드’에 참여했다.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문제는 어디에 투자할 것이냐다. 통신사업자들은 투자할 데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cdma 1x망 투자를 마무리한 상태에서 WCDMA망과 같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차세대 투자를 당장 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망 이외의 부문 역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뭐 하나 투자하려고 하면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난을 뒤집어쓴다.

 그래서 통신사업자들은 가만히 있다. 그러다보니 ‘미래 투자 때문에 요금을 많이 내려선 안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투자유도 정책으로의 전환=전문가들은 달라진 통신투자 환경에 맞게 유연한 정책을 정부가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WCDMA 투자의 경우 정부가 힘으로 재촉하기보다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현행 EVDO서비스의 데이터 요금을 획기적으로 낮춰 수요를 늘리고 트래픽을 증가시켜 WCDMA를 조기에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하고 있다.

 통신투자의 범위를 넓혀주는 정책에 대한 요구도 높다. 통신사업자의 투자가 곧 망 설비투자라는 등식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어떤 투자가 후방산업에 긍정적인가를 깊이있게 고민해야 한다. 전화망 위주의 통신투자는 최근 인터넷 기간망 투자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국내보다 외국 업체가 독주할 가능성이 높다. 라우터만 해도 대형 업체는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다.

 이러한 투자가 우리 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비즈니스통합 추세에 맞춰 통신사업자는 통신 이외의 투자를 모색중이다. KT는 디지털홈미디어, SI사업은 물론 전력까지 미래 사업의 범위에 넣고 있다. SK텔레콤은 모바일비즈니스를 위해 금융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려 한다.

 그러면서도 사업자들은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본다. 통신 또는 통신과 유관한 사업이 아닐 경우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 엉뚱한 데 돈을 쓴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투자한다면 논란이 되겠으나 가급적 통신사업자의 투자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게 전반적인 투자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거들었다.

 통신사업자가 통신 자체 또는 유관 분야에 대해 투자할 경우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차세대 통신, IT와 관련한 자체 연구개발이나 관련 벤처기업에 대해 투자할 경우 세제나 인력채용 등에서 각종 혜택을 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공급 위주의 성장이 아닌 수요 위주의 성장 동인을 찾고 이를 투자의 유인책으로 삼는 것이 합당하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과 동떨어진 투자만을 종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요확산의 키로 콘텐츠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3세대 이후의 통신서비스는 콘텐츠 수요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에 앞서 통신사업자들도 위상에 걸맞게 IT산업계에서 해야 할 역할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코리아IT펀드’만 해도 정부가 앞장서기 전에 통신사업자들이 스스로 나섰다면 모양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통신사업자들은 콘텐츠공급업체(CP)간의 수익배분을 좀더 합리적으로 바꿔 CP들이 활발히 수요를 창출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NTT도코모는 아이모드 초기에 CP에 대해 대대적으로 지원했고 수요창출과 서비스 활성화에 성공했다.

 설비투자와 관련해선 통신사업자들이 마스터플랜을 제시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춘 국내 장비업체들이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도움주신분들>

 김지일 텔슨정보통신 사장, 이관수 삼성전자 전무(네트워크산업경쟁력강화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상훈 KT 연구개발본부장, 염용섭 정보통신연구원 연구위원, 한수용 SK텔레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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