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과기계의 피해의식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요즘 과학기술계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최근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이슈는 차기 정부가 어떤 연구개발정책을 펼치느냐 하는 것이다. 노 당선자가 대선 당시 연구개발예산의 대폭적인 확대를 약속하고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차기 정부의 10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을 때만 해도 과기계는 큰 호응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 연구개발예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연구평가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가 인수위로부터 흘러나오면서 과학기술자들은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기라도 한듯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과기인들은 역대 정부가 예산의 중복지원 및 낭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끄떡하면 ‘연구개발 평가체제 강화’란 무기를 들고 나와 애를 먹은 기억을 갖고 있다.

 이런 소문이 나돌면 연구개발자들은 본업인 연구개발을 제쳐놓고 보고서 작성이나 잘못된 예산지출은 없는지 조사하느라 법석을 떨어야만 했다. 때문에 지금도 ‘연구개발의 효율적 관리’라는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어찌 보면 심각한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당선자의 과기계 공약에 크게 기대한 연구자들도 ‘그럼 그렇지’ 하며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혹자는 과기계의 표를 의식해 연구관리평가에 대한 사항은 선거운동 당시 언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까지 한다.

 연간 5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예산이 투명하고도 용도에 맞게 잘 쓰여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연구개발사업 평가를 회계·보안·감사나 단순 경제논리로 풀려 해서는 곤란하다. 연구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는 많은 선의의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가 만약 예전처럼 단지 예산이 낭비된다는 주장과 추측만으로 제대로 된 평가와 검증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섣불리 연구평가를 실시한다면 힘없는 과학기술자들은 또다시 도마에 올라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이제 막 살아나고 있는 연구개발자의 의욕을 꺾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업기술부·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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