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뮤직리서치]`모던 록의 귀인` 델리 스파이스

 90년대 음악계의 새로운 세력인 인디와 언더를 논할 때 3인조 그룹 델리 스파이스는 크라잉 넛과 더불어 선두에 위치한 그룹이다. 97년에 발표한 그들의 첫 앨범은 ‘차우차우’ ‘가면’과 같은 영국의 세련된 록을 연상시키는 록넘버를 선사하면서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평단은 “그들이 한국에 언뜻 이식되기 어려워 보였던 모던록의 대중적 친화를 몰고 왔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들의 탄탄한 음악적 행진은 더욱 더 비상의 날개를 폈다는 평을 받은 99년의 ‘웰컴 투 더 델리하우스’, 이듬해 2000년의 ‘새드 벗 트루’로 계속되었다. 하지만 코드의 확장을 꾀한 2001년의 앨범 ‘D’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다섯번째 신보 발표를 목전에 둔 델리 스파이스의 마음은 무겁다. 4집의 미지근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던 록의 귀빈’이라는 앞선 자의 책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뭔가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팬들도 과연 그들이 이번에 어떤 음악을 내놓을까 궁금해한다.

 뜻밖에 델리 스파이스는 전작과는 전혀 다른 ‘초강수’를 두었다. 여러 악기를 대거 도입해 방대한 스케일을 구사했던 방식과 작별하고 REM·U2&큐어 등에 영향받은 영국적 모던록, 정확히 말해 브릿팝을 특징지은 ‘기타팝’을 취한 것이다. 이 스타일은 바로 그들 사운드의 전형이다. 다시 말해 초심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그들만의 멜로디를 꽉 붙잡으면서 한층 중력을 불어넣은 방법을 구사해 힘있는 곡의 동선(動線)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노인 구국 결사대’와 ‘날개 달린 소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디스토션을 잔뜩 머금은 김민규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부터 귀를 놀라게 한다. 수록곡 ‘별빛 속에’ 역시 빅 드럼 사운드를 강조하면서 초강력 소리 메커니즘을 펼치고 있다.

 조용한 노래들도 변화를 기했다. 타이틀곡으로 내정된 ‘고백’은 델리 스파이스 표 러브 송이지만 전작들보다 그들의 멜로디 감수성이 토착화, 한국화하고 있음의 명백한 증명이다. 록 연주 하모니에 ‘국산’ 멜로디를 드라마틱하게 결합한 것이다.

 그들의 농익은 곡 창작·편곡 능력은 ‘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 ‘처음으로 우산을 잃어버렸어요’ 그리고 ‘Quicksand’에서 압권을 이룬다. 다들 작품성과 상업성의 조화, 그리고 대중음악의 생명이라 할 ‘곡의 파워’와 ‘매력적인 주 멜로디’의 편안한 동거를 획득했다. 다들 델리 서포터스들의 몰표가 예상된다.

 데뷔 6년차의 피와 땀을 연로로 한 연착륙이자, 중견 밴드의 회심작이라 할 만하다. 4집의 부진을 극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팬들과 언론매체의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모든 우려와 불안을 날릴 만한 통쾌한 카운터 펀치 격의 앨범이다. 그들의 재등장으로, 막 개시된 밴드록의 행진에 더욱 가속도가 붙고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델리 스파이스가 전해줄 낭보를 기다린다.

 

 임진모(http://www.izm.co.kr)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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