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16일 발표한 이동전화 식별번호(010) 조기도입과 번호이동성 시차 적용 등 새로운 번호 정책은 기존의 비대칭 규제 정책이 사실상 효과가 없었음을 자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의 일관성과 적정성 부분의 논란이 일 전망이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진행함으로써 그 배경에 의혹도 일고 있다. 사업자간 이해 관계도 크게 엇갈려 갈등도 심화될 조짐이다.
◇정책 변경 배경=정통부는 새 번호 정책의 목적으로 이동전화 가입자의 편의 증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지배적 사업자의 브랜드 이미지를 약화시켜 후발사업자를 돕겠다는 ‘비대칭 규제’가 핵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정통부는 그동안 이동망 접속료율 조정, 선·후발사업자간 요금 격차 등을 통해 선발사업자로의 ‘쏠림현상’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졌다.
이에 따라 후발사업자들은 SK텔레콤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2세대 식별번호 공동사용제(넘버풀)와 이동전화 시차제 등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정통부는 후발사업자들의 요구를 수용, 2세대 번호이동성 시차제를 받아들였다. 반면 번호공동사용제로 혼란이 야기될 것을 우려, 이 대신에 010 식별번호 조기 도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 브랜드에 큰 타격=정통부의 번호 정책 변경에 따라 SK텔레콤의 브랜드 마케팅은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됐다. 업계에서는 후발사업자들이 요구했던 번호공동사용제와 번호이동성 시차 적용 두가지 이슈 모두다 사실상 SK텔레콤의 ‘011’ 브랜드 이미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정통부가 번호공동사용제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010 식별번호를 도입해 SK텔레콤이 지금부터는 011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할 수 없게 돼 후발사업자들의 요구는 거의 수용한 셈이다.
이에 따라 선·후발사업자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KTF와 LG텔레콤은 정통부의 새로운 번호정책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LG텔레콤 고위 관계자는 “번호이동성 시차 도입으로 유효경쟁 환경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SK텔레콤은 정통부의 정책에 즉각 반발했다. SK텔레콤은 “이번 발표 내용은 특정 경쟁업체 지원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여 만들어낸 011 브랜드 가치를 일방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러한 번호정책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이동전화 번호는 소비자의 선택사항이지 정부의 규제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문제점은 없나=정통부의 번호 정책을 놓고 대 소비자 정책이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일부 이해관계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해 의사결정의 적정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번호전문가들은 식별번호 변경 등은 소비자의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장기간 시간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시외전화 번호 변경에도 수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정통부의 이동전화 번호 정책이 너무 조급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통부가 오는 2007년에 유·무선통합번호 시행을 추진중이어서 이동전화 사용자들은 현재 식별번호를 010으로 바꾸고 또다시 통합번호로 바꾸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럴 경우 전화번호의 잦은 변경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명함이나 간판을 교체하는 것에서 개인과 기업의 전화번호 정보 관리에 이르기까지 유형 무형의 손실이 예상된다.
번호 통합의 편익과 사회적 비용의 충돌 문제에 대한 심도 있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접속료 산정도 한층 복잡해져 이를 둘러싼 사업자간 갈등도 심화될 전망이다.
새 번호 정책은 2㎓ 대역 IMT2000 서비스 도입에도 다소 차질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번호 정책이 2세대와 3세대 번호 혼용을 인정할 경우 사업자들은 차세대 서비스인 2㎓ IMT2000을 이용한 마케팅의 매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 대역 IMT2000 서비스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통해 IT경기를 진작시키겠다는 정통부의 기존 입장과도 사뭇 대치되는 셈이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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