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대형 컴퓨터 시장은 ‘정중동(靜中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시장 규모 자체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데다가 산업 자체를 뒤 흔들만한 메가톤급 이슈가 예정돼 있지 않다.
하지만 가만히 안을 들여다 보면 산업의 지형과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기술 및 마케팅 이슈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한국IBM과 한국HP라는 두개의 거대 공룡기업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첫해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할 만하다. 한국HP의 등장은 여러 측면에서 한국IBM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경쟁사를 만났다는 점에서 올 한해 양사의 불꽃 튀기는 경쟁을 예상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HP가 한국IBM과 비슷한 면모를 갖추는 동안 한국IBM은 PwC컨설팅코리아를 합병함으로써 한국HP가 다소 취약한 서비스 분야에서 한 걸음 앞서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한국IBM이 PwC컨설팅코리아 인수 효과를 얼마나 거두느냐에 따라 양사의 1라운드 게임 승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품 측면에서는 서버보다는 스토리지 분야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서버 공급업체들이 서버시장에서의 둔화된 성장폭을 대체할 품목으로 스토리지 분야를 꼽고 있어 더 이상 스토리지는 전문벤더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 경기위축으로 인한 신규시장창출을 위해 대형 사업자들조차 SMB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올 서버·스토리지 시장은 기업규모나 전문 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전면 경쟁이 예상된다.
◇한국IBM과 한국HP 격돌=지난해 말로 구 컴팩코리아와 법적 통합을 완료한 한국HP는 한국IBM과 함께 올 국내 IT시장을 이끄는 ‘IT토털 솔루션 사업자’로서 양대 산맥을 형성하게 됐다. 이미 거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경쟁체제를 형성하게 된 양사는 외형 또한 1조5000억원 전후(한국IBM의 경우 LGIBM 포함)의 매출 규모를 갖추게 돼 IT사업자의 최고 자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이는 무엇보다 중대형 컴퓨팅 시장의 양극화현상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대기업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올해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둘 것인가 하는 점도 관심거리다. 서비스그룹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한국유니시스의 변신, 솔루션기반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는 한국후지쯔의 약진, 특화시장에서 뿌리내리겠다는 스트라투스테크놀로지코리아나 SGI코리아 등의 움직임도 지켜볼 만하다.
◇차세대컴퓨팅 전략 가시화=올해는 중대형 컴퓨팅 3인방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컴퓨팅 전략이 본격 등장하는 시기로 점쳐진다. 한국IBM의 차세대 e비즈니스 전략인 ‘온디맨드’ 전략을 비롯해 한국HP의 ‘어댑티브 인프라스트럭처(AI)’, 한국썬의 ‘N1’ 전략은 해당 기업의 제품군들이 자동화·가상화·통합화 등의 기술 세례를 받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더욱이 올해 특별한 기술 및 마케팅 이슈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3사는 이같은 컴퓨팅 전략을 올해의 대표적인 이슈로 밀어붙일 전망이다.
사업자들의 이같은 컴퓨팅 전략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IT자원을 최적화하고, TCO를 절감하거나 ROI를 높이는 대안으로서 아웃소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 웹서비스나 웹서비스를 구현하는 인프라 차원의 그리드컴퓨팅 구현 등과 연계돼 시장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64비트 아이테니엄 시대 개막=지난해 말 로엔드 아이테니엄 서버가 현업에 공급된 사례가 나온 만큼 올해 아이테니엄 서버의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입 여부 또한 올 서버 시장을 달굴 중요한 이슈로 꼽을 수 있다. 리눅스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의 62비트용 전용 OS가 본격 등장하고, 서버 사업자 중에서는 한국HP가 아이테니엄 3번째 칩인 ‘메디슨’이 장착된 슈퍼돔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런 객관적 요인들이 64비트 인텔 서버의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출을 가속화시킬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사업자들은 아이테니엄 활성화 방안으로 ‘리눅스 기반의 서버 클러스터’ 프로젝트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그리드컴퓨팅 전략과 맞물려 고성능컴퓨팅이나 슈퍼컴퓨터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구현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SGI코리아나 LGIBM, 삼성전자 등 아이테니엄 서버 출시 시기를 저울질해온 사업자들이 올해는 아이테니엄 서버 출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임에 따라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될지가 관심거리다. 이런 시장 상황에 힘 입어 하이엔드 IA서버 전략을 추진해온 한국유니시스의 사업이 얼마나 약진할 지도 주목할 만하다.
◇IA서버 시장 혈전=올해 인텔 아키텍처(IA)서버 시장에서는 한국HP를 따라잡기 위한 LGIBM의 전력 투구가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로엔드시장에서 IA서버와 유닉스 엔트리급 시장이 구분돼온 것과 달리 올해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양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예견된다.
반 ‘윈텔’의 대표주자인 한국썬이 IA서버를 출시한다는 것도 그 대표적인 예다. 또 지난해 큰 폭의 구조조정을 끝내고 사업을 정비한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 채널 정비를 통해 본격적인 서버 사업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삼성전자 등의 사업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인텔코리의 채널로 ‘화이트박스’로 불리는 업체들이 수면 위로 올라설 것으로 점쳐진다.
◇스토리지 경쟁 치열 예고=지난해 하이엔드에서 로엔드까지 유닉스 서버를 둘러싼 경쟁 양상은 올해 스토리지 시장으로 옮겨 재현될 전망이다. 이런 현상은 그동안 서버에 종속된 시스템으로 존재했던 스토리지가 독립된 IT자원으로 부각된 데서 한발 나아가 논리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IT자원을 효율화하는 첫걸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스토리지 통합’이 시장의 핫 이슈로 본격 등장하리라는 전망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한다. 가상화 구현 논쟁 역시 궁극적으로는 스토리지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가상화 구현기술이나 방법을 둘러싼 기술 및 제품 우위 논쟁이나 실제 가상화를 통한 자원의 효율적 활용 구현은 올해 현실로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올 스토리지 시장에서 한국IBM이나 한국HP와 같은 서버 업체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이들 업체는 기간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의 도입이 꾸준히 증가함으로써 사내 데이터가 급증했고 재해복구환경과 같은 특수효과로 인해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더 이상 전문업체에 시장을 내줄 수 없다는 야심을 보여왔다. 올해는 그 움직임이 어느 해보다 공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독보적인 위치를 위협받고 있는 한국EMC는 이에 대처해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선발 사업자로서 한국EMC의 이같은 움직임은 이 시장의 이슈를 TCO나 ROI로 옮겨가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전문업체로서 한국EMC의 자리를 넘보는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세우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SMB로 활로를 찾자=한 자릿수 성장이 예상되는 경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공급업체들의 노력은 SMB시장 공략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서 SMB는 외형적 기업 규모로 파악하는 중소기업 의미보다는 그간 핵심 업종에서 벗어나 있던 기타업종의 고객 발굴과 ‘적은 예산으로 고효율을 올릴 수 있는’ TCO 차원의 제품 전략의 의미가 더 크다.
여기에 하이엔드급 위주의 제품 판매와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는 대형 사업자들이 경기위축과 더불어 매출 확대의 한 방법으로 저가형 시장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버·스토리지 분야에서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들어 미드레인지 이하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일었으며 특히 이런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채널 및 파트너 조직 정비도 이뤄졌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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