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비전 2003:반도체·산전업계]그래도 `희망의 햇살`은 비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IT 경기 침체 지속, 중국·동남아 등 후발국의 추격 가속,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및 북한 핵 위기, 유가 및 환율 불안, 날로 가중되는 인력난 등…. 양띠해인 계미년 새해를 맞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산전업계 관계자들의 얼굴은 대체로 어둡다.

 어느해이건 ‘한해 농사’를 준비할 때는 그 해의 위협요인과 기회요인이 상존하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유달리 기회요인보다는 위협요인과 돌출 변수(악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위기가 결코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품·산전업계는 불투명한 경영환경속에서도 제2의 도약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해벽두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한다면 다시 옛 영광을 재현하며 르네상스를 맞을 수도 있다는 기대속에서 새해를 맞는 각오가 남다르다.

 업종별로, 혹은 업체별로 다소 차이는 나지만 부품·산전업계의 새해 경영 화두는 공격 경영이다.

 경영자들은 대외 경영환경이 매우 척박하지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소신을 바탕으로 비교적 공격적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한 업체가 많다. 또 ‘어려울 때 일수록 투자하라’는 격언처럼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도 돌출변수에 상관없이 강행한다는 업체가 늘고 있다.

 공격 경영의 선봉에선 업종은 단연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휴대폰부품 등 ‘빅4’. 오랜 경기침체의 늪에 허덕였던 반도체는 하반기부터 PC교체수요와 맞물려 수요가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탈 것이란 전망에 따라 관련업체들이 올해 매출목표를 대부분 두자릿수대로 늘려잡았다.

 비단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온칩(SoC)·LDI·ASIC 등 비메모리업체들 역시 이동통신 등 전방산업의 호조와 애플리케이션의 다양화로 인해 올해 신규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예상, 공격 경영을 선언했다.

 디스플레이 부문 역시 노트북, PC 모니터, TV 등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다양하고 차세대 평판디스플레(FPD) 시장 및 응용 분야가 빠르게 확산돼 대부분의 관련업체들이 대폭적인 매출 신장을 예상한다.

 특히 TFT LCD업계는 세계 시장을 석권, 시장 지배력이 워낙 높은데다 차세대 설비투자면에서 대만·일본 등 경쟁국을 압도하고 올해 30% 이상의 매출 성장을 낙관한다. PDP·유기EL 등 차세대 FPD업체들도 올해부터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할 것으로 보고, 공격경영을 통해 세계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휴대폰 바람에 힘입어 지난해 초 호황을 구가했던 휴대폰 관련부품 업체들도 올 시장 전망을 낙관, 대부분 공격적인 경영목표를 수립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의 ‘나홀로 호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휴대폰부품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메이드인코리아’ 휴대폰이 세계시장을 누비면서 올해도 휴대폰 부품특수는 지속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이에 따라 휴대폰 부품업체들이 설비증설과 연구개발 투자가 어느해보다 활발하며 이 시장에 신규 가세하는 업체도 급증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모바일기기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2차전지업계 역시 올해 공격적인 경영목표를 잡고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난해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한 업계로서는 올해 그동안 뿌린 씨앗에서 본격적으로 열매를 수확하는 해로 잡고 매출목표를 전년대비 대폭 늘려잡았다. 이와 함께 설비투자를 더욱 가속화, 전지왕국 일본의 메이저급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혀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말처럼 시장이 이미 성숙기 내지는 퇴조기미를 보이고 있는 일부 범용 부품업계는 불가피하게 보수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시장 자체도 불투명한데다, 중국·동남아 후발국들이 저가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세트업체들의 글로벌 생산체제구축이 가속화돼 ‘성장’보다는 ‘현상유지’나 ‘소폭 성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자체 분석에 따른 것이다.

 올해 부품·산전업계의 대표적인 또 하나의 화두는 ‘글로벌 경영’.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국경없는 비즈니스가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수요처인 세트업체들이 해외로 조립라인을 대거 이전, 글로벌 전략이 없이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일반 범용부품업계는 대부분 ‘생산은 해외에서, 개발은 한국에서’란 공식이 굳어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엔 개발-생산-마케팅에 이르는 현지밀착형 글로벌 경영 전략도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다.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몇몇 ‘월드 베스트’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단순 생산기지 이전 차원에서 벗어나 철저한 현지화를 통한 글로벌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삼성SDI. 이 회사는 이미 중국, 유럽,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 해외 생산거점을 통한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으며 올해도 글로벌 경영의 고삐를 더욱 당길 방침이다.

 반도체·LCD업체들도 중국 등지로 후공정 부문을 이전, 올해부터 현지진출한 다국적 기업들과 정면승부를 벌일 계획이다. 삼성전자·LG필립스LCD 등 TFT LCD업계는 특히 올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중국) 진출, 다국적 경영의 시험대에 오른다.

 더욱이 LCD업체들은 백라이트유닛(BLU) 등 후공정 관련 협력업체들의 동반진출을 유도함으로써 현지 밀착 마케팅과 적기 공급체계를 구축,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전략이다.

 경영진과 일선 현장 근로자들과 거리를 좁히는 이른바 ‘현장경영’도 새해 부품·산전업계의 조용하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업계 경영자들은 “이제 책상머리에서 경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한다.

 철저한 현장 중심의 경영만이 조직력을 극대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LG필립스 구본준 사장은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구미행 기차에 오른다”면서 “경영진들도 이젠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해결해줌으로써 맨파워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보다는 질 위주의 ‘내실경영’도 올해 주목할 부분이다. 그동안 국내 부품·산전업계는 매출 확대 중심의 양적 성장 위주의 경영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세트업계의 지속적인 공급가격 인하압력과 부품구매의 글로벌 저가 입찰제가 도입되면서 부품업계의 채산성 확보에 적신호가 켜졌다.

 설상가상으로 대부분 핵심소재와 같은 원부자재류를 수입에 의존, 환율변동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따라서 부품·산전업계에선 양보다는 질이 우선이라는 경영전략상의 변화가 뚜렷하다.

 내실경영의 핵심은 불요불급한 비용을 줄이는 수동적인 측면과 과감한 신공법 도입과 경영혁신 등을 통해 품질과 수율을 제고, 수익성을 높이는 능동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올해 부품·산전업체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할 숙제 중 하나다.

 업계는 특히 선진 프로세스의 과감한 도입과 공정 개선을 통한 원가 절감 그리고 6시그마운동 등 경영혁신운동을 전부문으로 확대 적용함으로써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원가압력에 정면 대응, 내실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부품·산전업계 관계자들은 “경영환경과 시장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오히려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져다 주는 법”이라며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듯이 연초부터 부품업계를 짓누르고 있는 여러 악재들이 장기적으로는 약이 될 수 있도록 올해 다양한 경영전략을 수립, 대응할 생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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