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북핵사태로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IT분야만큼은 상대적으로 예외인 것 같다. IT 교류협력이 가장 현실적인 남북교류의 장이라는 인식을 남북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측의 자본·상용화 기술과 북측의 우수한 기술·인력을 합칠 경우 커다란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교류에 대한 의지와 정책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남북교류 중단에 반대입장을 밝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경협을 비롯한 남북교류는 현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큰 흐름에서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부터 북한의 평양정보쎈터와 IT공동연구를 진행해온 포항공과대학교의 박찬모 대학원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0대 국정과제 중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에 포함된 남북경제 교류협력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북이 모두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IT분야”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남북 IT협력이 지금까지의 양적 성장을 발판삼아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지적되고 있는 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바세나르협약이라는 대북한 전략물자반출제도다. 이 제도는 남북 IT협력에서 대표적인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남한기업들이 IT분야에서 북한측과 다양한 공동사업 합의안을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바세나르협약 등에 발목이 묶여 진전을 못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남북이 평양에서 통신회담을 열고 평양과 남포 일원에서 공동추진키로 합의한 CDMA 이동전화사업과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사업이 더이상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북 전략물자 수출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북미관계 개선과 함께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게 필수적이지만 현재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관계를 볼 때 당장은 그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8월말 남북경제협력위원회 2차 회의에서 남북한이 각기 법적 절차를 밟아 발효시키기로 합의한 4개 경제협력합의서(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상사분쟁 해결절차·청산결제)도 아직 요원하다. 4개 경협합의서는 경협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제도적 장치지만 국회로 넘겨진 4개 경협합의서 조약비준 동의안은 지금까지도 계류돼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북한연구팀장은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정적인 북미·남북관계가 조성되는 게 필수적이고 이런 환경에서 4대 경협보장합의서는 물론 남북한 직교역을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열악한 통신인프라와 IT장비도 교류의 확대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남북간 통신협력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을 지원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남북교류를 가로막는 물리적인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남북이 CDMA방식의 이동전화와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사업을 공동추진키로 합의한 것은 그 단초가 될 수 있다. 정보통신 교류방안을 연구해온 KT 통신망연구소 김주진 실장은 “통신인프라 체계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아 경협으로 생산된 물품이 적재적소에 공급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노후화된 정보통신망의 재건은 남북대화를 빠르고 저비용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에 협력체체 구축은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열린 남북 당국간 첫 통신회담의 막후 조정역할을 맡았던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북한이 경협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남한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며 “남북을 아우르는 IT인프라 구축은 새정부에서도 충분히 의미있는 과제이고 추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남북경협을 수행하고 있는 기업가들은 특히 새정부가 실질적인 IT교류를 위한 제도적 조치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5년째 평양에서 모니터 조립생산을 해오고 있는 아이엠알아이의 유완영 회장은 “실질적인 경제교류가 이뤄지기 위해 차기 정부는 거창한 구호보다 반드시 필요하고 실현가능한 조치부터 취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투자보장협정 등의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지난 2001년부터 평양정보쎈터와 네트워크기술 공동개발에 나선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도 “공장과 연구소가 북한지역에 자유롭게 들어설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남북 투자보장협정 체결과 개성공단 입주시 자유로운 장비반입을 위해 바세나르협약 등의 걸림돌이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단계의 남북 IT교류 수준에 걸맞은 공식 또는 비공식 지원체계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남북 IT교류·협력사업 성과들이 지금까지 남북 양측에서 힘을 얻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제도적 지원과 함께 부처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상시기구의 설립도 남북교류 확대를 위해 시급한 과제다.
박찬모 원장은 특히 “남북 IT교류협력에 저해가 되는 규정이나 법률을 새로운 각도에서 정비하는 한편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남북공동 IT교류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기본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초창기 대북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바 있는 최성 통일정보센터 소장은 “북미관계가 정상화돼 바세나르협약 등의 개정이 이뤄질 때 남북 IT교류는 통일한국의 물꼬를 트리라 확신한다”며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에 거는 기대와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도움말 주신 분= 박찬모 포항공대 대학원장, 최성 통일정보센터 소장, 유완영 아이엠알아이 회장,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주진 KT 통신망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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