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 입시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입시생들의 이공계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인간개발연구원(회장 장만기 http://www.khdi.or.kr)이 발행하는 ‘베터 피플, 베터 월드(1월호)’에 실린 ‘대학 입시현장에서 본 이공계 기피현상’을 소개한다.
요즘 각 대학들은 신입생을 확보하기 위해 초비상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학지원자 수가 대학정원을 밑돌면서 대학은 공급자 시장에서 수요자 시장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현상은 특히 이공계에서 두드러진다. 수학·물리·화학 등 기초학문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공학계열도 학생 수를 채우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같은 이공계라도 의과대학은 몰려드는 학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되는 의과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취업문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현실에서 대학졸업은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산업현장도 스스로 이공계 출신을 외면하다 보니 실용성과 현장 적응성이 높아 취업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던 이공계열의 강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선 대학정원조절 실패를 꼽을 수 있다. 80년대 이후 수도권 인구억제 정책 중 하나로 대학정원은 동결상태였다. 그러나 이공계열만큼은 증과증원에 관대했다. 특히 IT·BT 등의 첨단분야는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증원이 허락됐기 때문에 오늘날 이공계 정원이 인문계를 역전해 버린 것이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공계 기피라는 시대적 변화와는 무관하게 정원을 늘린 결과 이공계열 졸업자의 품질과 희소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요즈음 이공계열 졸업자는 취업기회가 넓지 않고 보수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 산업현장은 R&D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과 하급 노동직만 필요로 하기 때문에 중간관리 요원에 해당하는 이공계 대학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감소했다. 게다가 과거 이공계 졸업생들이 차지했던 직업은 오늘날 대부분 컴퓨터와 자동화의 몫으로 바뀌었다.
과학기술개발을 국가 지상목표로 추구하며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던 풍조가 사라지면서 사회적 인식도 열악해졌다. 이공계는 배우는 과정이 빠른 기술개발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쉬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회는 합당한 대접을 해주지 않았고 이러한 현실을 학생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공계 기피의 이면에는 수학과 과학공부에 대한 부담도 큰 몫을 한다. 이공계 공부는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은 온통 답답하고 딱딱하다는 느낌뿐이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공계열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새로운 교과과정, 교습도구 개발이 절실하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공산품 생산 위주의 경제구조가 금융거래 위주의 구조로 재편되면서 이공계 인력의 수요는 줄어들고 금융·법률·경영 등 인문계 인력의 수요가 늘어났다. 미국에서도 우수한 인력은 모두 법조계와 금융계 등으로 빠져나가다 보니 이공계 인력은 부족하다.
이에 따라 국내 이공계 인력도 일단 유학을 나가면 연착륙이 보장되지 않는 귀국을 포기하고 현지에서 취업, 체류하게 되고 그만큼 국내 이공계 인력난은 심화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과학기술 역량은 하루아침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다. 저변확대가 절실한데 신규 인력이 축적되기는커녕 기존 인력도 해외에 유출되는 현실에서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현재 우리 수출산업을 기술집약적 상품이 주도하고 있는 쾌거는 오랫동안 과학기술입국 드라이브를 펴온 결과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앞세대들이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들인 노력의 결실을 즐기고 있지만 앞으로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렵다.
<김현주 광운대학교 입학홍보처장 겸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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